2021年12月5日日曜日 待降節第2主日 お説教

今日は待降節第二主日です。 すでに待降節のろうそくに紫色のろうそくの二本に火がついています。
もう待降節が二週間になったという意味です。
今日の朗読と福音のみことばの核心テーマは他でもなく、いらっしゃる救い主を迎える時に私たちが持つべき態度は何なのか教えてくれました。
それは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で登場した「荒れ野で叫ぶ者の声」でした。「荒野で叫ぶ者の声」は誰ですか。 はい、それは洗礼者ヨハネです。
洗礼者ヨハネは何とおっしゃいましたか? 「主の道を整え」とおっしゃったでしょう?  この主の道を整えるのが、まさに悔い改めということです。
それでは、悔い改めとは、何でしょうか? それは第一朗読のみことばと第二朗読のみことばで、とても優しく教えてくれました。
第一朗読のみことばで教えてくれたとおり、悔い改めとは、「東の方に目を向ける」ということです。では、「東の方に目を向ける」というのは何でしょうか。 まさに太陽が昇るところ、つまり、光の中の光、まことの太陽である救い主イエス·キリストのもとへ目を向けるということです。
そうしてイエス様へ自分の目を向けてイエス様が教えてくださった掟通り実践して「清い者、とがめられるところのない者」に変化することです。
さあ、これで悔い改めが何かよく分かりましたね? それでは変化しましょう。 イエス様に自分の目を向け、世の中の人ではなく、イエス様のみ旨を実践するイエス様の人になるよう、私たちの行動の根本的な変化を目指しましょう。
そのためには、私たちは毎回、神のみことばに目覚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 世の中の価値観ではなく、神の国の法の価値観を持た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のためには常に「イエス様なら、今この状況でどのように行動する?」という問いを常に聞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うして、私たちはみんな、生活と行動に根本的かつ具体的な変化をし救い主イエス·キリストを喜んで迎えるようにしましょう。 私を含めて私たちみんなで努力してみましょう。 一人では大変だけど、共同体が一緒にイエス様に自分の目を向ければ十分にできると私は確信しています。 アーメン、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오늘은 대림 제2주일 입니다. 벌써 대림환에 자색초 두개째에 불이 켜져 있습니다.
대림절 중반이라는 뜻이죠.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의 핵심 주제는 다름이 아니라, 오시는 구세주를 맞이할 때 우리가 갖추어야 할 태도는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오늘 복음 말씀에서 등장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였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는 누구입니까? 네, 바로 세례자 요한이죠.
세례자 요한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주님의 길을 마련하라고 말씀하셨죠. 바로 이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것이 다름 아닌 회개라는 것입니다.
그럼 회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제1독서 말씀과 제2독서 말씀에서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1독서 말씀에서 가르쳐 주신 대로 회개란, 동쪽으로 눈을 돌려 보는 것입니다. 동쪽으로 눈을 돌려 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름 아닌 해가 뜨는 곳, 즉, 빛 중의 빛, 참 태양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시선을 향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에게로 자기 시선을 돌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계명대로 실천하여 순수하고 나무랄데가 없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자, 이제 회개가 무엇인지 잘 아셨죠? 그럼 변화합시다. 예수님에게로 우리 시선을 돌리고, 세상의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는 예수님의 사람이 되도록 우리 행동의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합시다.
그러려면 우리는 매 순간 하느님의 말씀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관이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의 법의 가치관을 지녀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늘 언제나 '예수님이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실까?'라는 물음을 늘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생활과 행동에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변화를 일으켜 다가오시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게 맞이하도록 해 봅시다. 저를 포함하여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해 봅시다. 혼자는 힘들겠지만, 공동체가 함께 예수님에게로 시선을 돌린다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아멘.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2月6日 月曜日 待降節第2月曜日 お説教

昨日韓国に帰れというそんな話を聞いて、ミサをして説教するのは簡単ではないですね。 まだ私の心は傷ついた心のままなのに。 それでも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は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るようにします。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をよくお聞きになりましたか? イエス様が中風を患っている人を治した事件の話でした。 この話の中で一番核心となるものだけを申し上げます。
イエス様が中風を患っている人を見て一番先におっしゃったみことばが他でもなく、「あなたの罪は赦された」でした. このみことばを聞いたファリサイ派の人々はかっとなりました。 そして心の中で「神を冒涜するこの男は何者だ。ただ神のほかに、いったい誰が罪を赦すことができるだろうか」と心の中で反発しました。
当時のユダヤ人の考え方としては、人間が人間の罪を赦せるということは、到底ありえないことだと考えました。 彼らは自分たちの罪を牛や羊にかぶせましたから。 彼らはそういう方法で自分の罪を償ったのです。
その牛や羊に人々の罪をかぶせたことを、今神の子であるイエス様が直接なさるという意味です。 イエス様が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で、「あなたの罪は赦された」とおっしゃったのは、他でもなく、イエス様ご自分で人々の罪を被るということです。 それで、人々の代わりにイエス様ご自分が罪人になって犠牲されるという意味です。 つまり、イエス様ご自分で犠牲になって、人々を罪からきれいにしてあげるということです。 わがイエス様はまさにこのような方です。
私たちは、奇跡や恵みが一番大変だと思っていますが、一番大変なのは、私たちの罪が洗礼の秘跡を通して赦された事実なのです。なぜなら、奇跡や恵みはイエス様のみことばによって可能ですが、罪の赦しはイエス様の十字架の受難によって成し遂げたものだからです。 一番難しいことである赦してもらったことの恵みをもっと黙想し、感謝する一週間になってほしいです。

어제 돌아가라는 그런 소리를 듣고 미사를 하고 설교를 하는 것이 쉽지 않네요. 아직 제 마음은 상처받은 마음 그대로인데. 그래도 해야 할 것은 해야 하니까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잘 들으셨죠?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낫게 해 주신 사건의 이야기였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보시고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다름 아닌 "네 죄를 용서받았다"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발끈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마음 속으로 '저 사람이 하느님을 모독하는 군. 하느님 말고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고 속으로 반발하였습니다.
당시 유다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사람이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소나 양에게 뒤집어 씌웠으니까요.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자기 죄를 씻었던 것입니다.
그 소나 양에게 사람들의 죄를 뒤집어 씌웠던 것을 이제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 말씀에서 "네 죄를 용서받았다"고 말씀하신 것은 다름아닌 예수님 본인이 사람들의 죄를 뒤집어 쓰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 대신에 예수님 본인이 죄인이 되어 희생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본인이 스스로 희생하셔서 사람들을 죄로부터 깨끗하게 만들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우리들은 기적이나 은혜가 가장 힘든 줄 알지만 가장 힘든 것은 우리의 죄가 세례성사를 통해 용서받은 사실이란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적, 은혜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가능하지만 죄의 용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수난으로 이뤄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힘든 일인 용서받음의 은혜를 더욱 더 묵상하며 감사하는 한주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2021年12月8日 水曜日 無原罪の聖マリアの大祝日 お説教

今日は無原罪のマリアの大祝日です。 すでに教会は無原罪のマリアを信条で宣言して過ごしているので、特別な説明はしません。
ただし、私たちが無原罪のマリアの祝日に忘れてはならないことがあります。 それは、
そもそも、アダムとエバーは人類の親として神様から選ばれましたが、神様と同じようになりたがる彼らの傲慢な心の結果から、原罪が生まれてしまったのです。 そもそも、アダムとエバーは罪のない状態で天国に入って暮らす予定だったのですが、彼らの罪によって楽園から追放され、神との関係性さえも破壊されてしまったのです。
そして、その子孫も罪に支配される人間性を持って生まれるようになってしまいました。
ところが、神様は人類救いのために神の子を派遣する際に、マリアを選択され、そのマリアは生まれる瞬間から、原罪から保護されました。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で、天使ガブリエルの言葉で「おめでとう、恵まれた方。主があなたと共におられる」(ルカ1、28)では「恵まれた」という表現はまさに聖霊でいっぱい満ちているという表現です。
私たちも、洗礼の秘跡と堅信の秘跡を通して、神の恵みを受け、神の子供として生まれ、また恵みの生活を通して福音を証として生きるようになりました。 イエス·キリストを通して私たちに与えられた恵みの保証は、まずマリア様の誕生の前、マリア様が胎内にいらっしゃった時から始まったことを、今日の祝日は確認してくれます。
私たちがマリア様から学べることは、他でもなく、マリア様の神への従順です。
マリア様は自分の意思を諦め、神のみ旨に従順したため、私たちはマリア様を教会の母として今現在までこのように敬っているのです。
今日の福音の最後に「わたしは主のはしためです。お言葉どおり、この身に成りますように」というマリア様の答えが毎日の生活の中でキリストの福音を証して生きる私たちの答えになってほしいです。 以上です。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ちなみに、今日は韓国カトリック教会の守護聖人である無原罪のマリアの大祝日です。

오늘은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이미 교회는 성모님의 원죄없이 잉태되심을 믿을교리로 선포하며 지내고 있기 때문에 큰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축일에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본래 아담과 하와가 인류의 부모로서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지만,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그들의 교만한 마음의 결과로 원죄가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본래 아담과 하와는 죄 없는 상태로 하늘나라에 들어가 살도록 예정되었지만 그들의 죄로 인해 낙원에서 추방되었고, 하느님과의 관계성 마저 파괴되고 말았죠.
그리고 그 후손들도 죄의 지배를 받는 인간성을 가지고 태어나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성자를 인류구원을 위해 파견하실 때 마리아를 선택하셨고, 그 마리아는 잉태되는 순간부터 원죄로부터 보호받으셨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천사 가브리엘의 말에서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 28)에서 '은총이 가득하다'는 표현은 곧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표현입니다.
우리도 세례 성사와 견진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고, 또 은총 생활을 통하여 복음을 증거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은총의 보증은 먼저 성모 마리아의 잉태 때부터 시작되었음을 오늘 축일은 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모님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성모님의 하느님께 대한 순종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성모님을 교회의 어머니로 오늘날까지 이렇게 공경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마지막에서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성모님의 응답이 매일 일상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며 사는 우리의 응답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참고로 오늘은 한국 천주교회의 수호자이신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2021年12月12日 待降節第3主日 お説教

待降節第三主日です。 もうすぐ主イエス·キリストが私たちにいらっしゃるという意味です。 皆さんが見ているように、 あの待降節のろうそくにろうそくが3つもついています。 今日を指して教会はバラの主日だそうです。 司祭は今日, ピンクの祭服を着, 救い主は間もなく信者たちに来られるということを知らせます。
信者たちに知らせながらいらっしゃる救い主に差し上げるプレゼントが何か教えてくれます。
それは、今日の典礼のみことばとおり、簡単に言えば、施し(慈善)の実践と毎日感謝しうれしく生きることです。
それで今日を指して教会は施し(慈善)の主日といって、信者たちに私たちが救われるために必ず必要なものが他でもなく施し(慈善)だと教えます。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で、洗礼者ヨハネは悔い改めた証拠を見せろと教えました。 本当に悔い改めた証拠として、自分が持っているものを惜しまず、助けが必要な人たちに計算せず、そのままありのまま全部配りなさいとおっしゃいました。
ところが、惜しみなく施し(慈善)を実践すると、不思議な現象が起きます。 それは、自分の心が自然に嬉しくなるということです。 それで施し(慈善)をこつこつと実践する人は毎日の日常生活を憂鬱にならないで嬉しく生きて行くというのです。 だからこそ今日の典礼のみことばは納得できます。 施し(慈善)を実践してこそ私たちは嬉しくなれるという事実を。
こんな言葉があります。 「年を取ったら口を閉じて財布を開けなさい。」
助けが必要な貧しい人に施す施し(慈善)の実践に、自分の財布を開けることをためらわないでください。
トビト記12章8節のみことばを心の中に刻みましょう。 「金をため込むよりも慈善の業をする方がはるかにすばらしいことなのです」 。
以上です。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대림 제3주일입니다. 머지않아 곧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보는 것처럼 저 대림환에 초가 세개나 켜져 있습니다. 오늘을 가리켜 교회는 장미 주일이라고 합니다. 사제는 오늘 분홍색 제의를 입어 구세주께서 머지않아 곧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신자들에게 알립니다.
신자들에게 알리면서 오시는 구세주에게 드릴 선물이 무엇인지 알려 줍니다.
그것은, 오늘 전례 말씀에서 들은 바대로, 쉽게 말하면, 자선의 실천과 매일 감사하며 기쁘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가리켜 교회는 자선 주일이라고 하여 신자들에게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다름 아닌 자선이라고 가르칩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세례자 요한은 회개했다는 증거를 보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진실로 회개했다는 증거로 자기가 가진 것을 아까워하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계산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다 나눠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자선을 아낌없이 실천하다 보면 신기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내 마음이 저절로 기뻐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선을 꾸준히 실천하는 사람은 매일의 일상생활을 우울해 하지 않고 기쁘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전례 말씀은 납득이 갑니다. 자선을 실천을 해야만 우리는 기뻐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라.'
도움이 필요한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자선의 실천에 자기 지갑을 여는 것을 주저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토빗기 12장 8절의 말씀을 가슴 속에 새기도록 합시다. '금을 쌓아두는 것보다 자선을 베푸는 것이 낫다.'
이상입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2月13日 月曜日 聖ルチアの記念日 お説教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で祭司長や民の長老たちがイエスさまに尋ねました。「何の権威でこのようなことをしているのか。だれがその権威を与えたのか。」
この言葉をもう一度考えてみると、「何の権威で私たちの人生に口を挟むんですか?」ということです。
祭司長や民の長老たちは、イエス様が来ることになっている救い主だとは知りませんでした。 予想すらできませんでした。 なぜなら、彼らが想像する救い主の姿ではなかったからです。
今現在も同じです。 私たちは果たして、いらっしゃる救い主をどんな姿で想像していますか? かわいい赤ちゃん? それとも栄光の姿でやってくる権力者?
もしかしたら救い主は既にいらっしゃって皆さんの中に住んでいるかもしれません。 例えば、施設にいるある90代のお年寄りの姿とか、突然皆さんの家のベルを押すホームレスとか、それとも皆さんが心から憎悪する敵なのかもしれません。
いずれにせよ私たちの予想とは違ってすでに私たちといっしょに住んでいるかもしれないのです。 誰が救い主なのか分からないかも知れないということです。 誰が救い主なのかどうか分からないから、人に会うたびに救い主を対するように接するしかないと思います。
でも、救い主を見分けることができる一つ確かなことがあります。あの方は貧しい人々が好きだということです。 貧しい人、精神的にも体的にも弱い者たち、そして、社会的にもいじめられたり、疎外された人たちの中に救い主がはっきり生きていることは、明確に否定することのできない事実です。
少なくとも、私たちはその昔、目の前で救い主と会話をしていたにもかかわらず、救い主に気づかなかった祭司長や民の長老たちのようにはなってはいけません。 私たちは、聖書から過去の前例を学んだのですから。 二度と過去の過ちを繰り返すことのないよう、常に祈って目覚め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
以上です。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오늘 복음 말씀에서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이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우리 삶에 참견을 하는 것이오?" 라는 것입니다.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예수님이 오시기로 되어 있는 구세주이신 줄 몰랐습니다. 예상 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상상하는 구세주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과연 오시는 구세주를 어떤 모습으로 상상하고 있습니까? 귀여운 아기? 아니면, 영광을 떨치며 오는 권력자?
어쩌면 구세주는 이미 오셔서 여러분 가운데에 살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시설에 있는 어느 90대 노인의 모습이거나, 불쑥 여러분의 집의 초인종을 누르는 어느 노숙자이거나, 아니면 심지어 여러분이 마음으로부터 증오하는 어느 웬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우리 예상과 다르게 이미 우리 가운데에 함께 살고 계실지도 모르는 일인 것입니다. 누가 구세주인지 모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구세주인지 모르니 사람을 만날 때 마다 구세주를 대하듯이 대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세주를 알아볼 수 있는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그분은 가난한 사람들을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약한 사람들, 그리고 사회적으로 왕따당하거나 소외된 사람들 안에 구세주께서 확실히 살아 계신다는 것은 명백하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 옛날 눈 앞에 구세주를 보고 구세주와 대화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세주를 알아보지 못했던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처럼은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성서를 통해 과거의 전례를 이미 배웠으니까요. 두 번 다시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과오는 되풀이하지 않도록 늘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2月15日 水曜日 待降節第3水曜日 お説教

2021年12月19日 日曜日 待降節第4主日 お説教

今日の第一朗読のみことばでは救い主がどこで誕生されたかについて具体的にお知らせてくださいました。そこはすなわち、イスラエルの中に一番小さい村のベツレヘムです。
そして第二朗読のみことばでは救い主がお望みになるプレゼントはいけにえや献げ物ではなく、ただ私たちの従順だとおっしゃいました。つまり、神の御心を行うことがまさに救い主が一番お望みになるプレゼントだとおっしゃいました。
そして最後に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ではいらっしゃる救い主は主である神様ということを洗礼者ヨハネのお母さんのエリサベトを通してお知らせてくださいました。エリサベトは救い主を宿したマリアに向かって「わたしの主のお母さま」と言いましたよね?
そして一番祝福された人はどんな人なのか今日の福音の最後で教えてくださいました。それは、主のみことばを信じてその御心を行うために頑張るすべての人々がみんな神の祝福を受けた人ということをエリサベトの口を通して教えてくださいました。その祝福の一番トップになった方がまさにマリア様ですね。
分かりましたか。神様が私たちに一番お望みになるのはすなわち、神の御心を行いながら生きることだということを。
では、その神様の御心は何でしょうか。福音書全部見てください。神の子、イエスキリストがどのように父である神様の御心を行いながら生きられたか自分の目で見て学んでください。
そして、フランシスコ教皇様は、今までの消費至上主義のクリスマスのお祝いのやり方を捨て、より真剣に救い主のクリスマスを迎えるようにおっしゃいました。 つまり、救い主の馬小屋の前に座り、沈黙と祈り、そして施しでクリスマスを祝うように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馬小屋の前に座った羊飼いたちのように。 以上です。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2021年12月20日月曜日 待降節12月20日 お説教

今日の福音でマリア様は天使ガブリエルの訪問を受け、四つの態度を見せてくださいました。
一番目、マリア様は「おめでとう、恵まれた方。主があなたと共におられる」という挨拶を聞いてとても戸惑いたそうです。
二番目、マリア様はこの挨拶は何のことかと考え込んだそうです。
三番目、救い主を産むことになるという話を聞いて納得のいかない部分について天使に質問しました。
四番目、将来自分の体に起きる変化が神様のされることだということを聞き、またその例として、子供を産めない親戚エレサベトの妊娠の知らせを聞き、マリア様はついに神の計画に従いました。
私たちもマリア様のように、こうしましょう。
パンとぶどう酒がキリストの体と血に変わる神の神秘をミサのたびに体験します。 そしてこの神秘をまるでマリア様が救い主を胎内に宿いたように、私たちもパンになったキリストの御体を私たちの体の中に保存しましょう。
まず、この驚くべき神秘について、なぜよりによって神様が「私自分」という存在を選択し、私自分の中にいらっしゃるようになったのかをマリア様のように考え込みましょう。
そして、「私自分」という存在を通して、私自分と一緒に神様が一体何をなさる計画なのか理解できない部分について絶えず質問してみましょう。
そして、このすべてのことが永遠にあなたご自分と一緒に生きるようにしようとする神様が私自分に与える愛という事実を悟って、その愛について感謝しながら、これからたびたび私自分にご聖体秘跡を通して来られる救い主イエス·キリストのみことばに従いましょう。 以上です。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오늘 복음에서 성모님은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을 받고 네 가지 태도를 보여 주었습니다.
첫번째, 성모님께서는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는 인사말을 듣고 무척 놀랐다고 합니다.
두번째, 성모님께서는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지 곰곰이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세번째, 구세주를 낳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납득이 안가는 부분에 대해서 천사에게 질문하셨습니다.
네번째, 장차 자기 몸에 일어날 변화가 곧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듣고, 또 그 예로 아이를 못낳는 친척 엘리사벳의 임신 소식을 듣고나서 성모님은 마침내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이렇게 합시다.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는 하느님의 신비를 미사 때 마다 체험합니다. 그리고 이 신비를 마치 성모님께서 구세주를 태내에 잉태한 것처럼, 우리도 빵이 되신 그리스도의 몸을 우리 몸 안에 저장합니다.
첫째, 이 놀라운 신비에 대해 왜 하필 하느님께서 '나'라는 존재를 선택하시어 내 안에 오시게 되었는지 성모님처럼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를 통해, 나와 함께 하느님께서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실 계획이신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해 봅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영원히 당신과 함께 살게 하려는 하느님께서 내게 베푸시는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사랑에 대해 감사하면서 앞으로 자주 내게 성체 성사를 통해 오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이상입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2月22日 水曜日 待降節 12月22日 お説教

今日の朗読のみことばでは、ハンナは後にイスラエルの預言者サムエルを産みました。 彼女は息子を産んでくださった神様に感謝の供え物を捧げました。
そして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では、マリアが救い主を宿いたことについて、感謝と賛美の歌を歌いました。
二人とも、恵みをくださった父である神様に感謝をしたということは同じです。
しかし、違いがあります。
一番重要な違いは、ハンナは自分の祈りの努力の結果、息子を産むことができたということです。
反面、マリアはただ神の恵みの力だけで救い主の母となっていたのです。
つまり、一人の女性は自分の努力で男の子を産み、もう一人の女性は自分の努力とは関係なく、神の恵みによって救い主を産んだのです。
私たちは今日のみことばから2つを学ぶことができます。 一つは、ハンナから学べるけど、神様に切実に祈れば必ず叶うということ、そして私たちもマリア様のように神様の恵みが今も私たちに与えられ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
それが何かというと、まさに秘跡の恵みです。 特に、ご聖体秘跡は私たちの努力により私たちが受けてい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 すべて神の憐れみと愛と犠牲の結果、私たちにただで与えられているのです。
ですから、私たちも今日のマリア様のように私たちの努力とは関係なく、ひたすら神の憐れみと愛でくださるこの無限な恵みについて感謝と賛美の歌を歌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うじゃないですか? もし、感謝を捧げなければ、私たちは恵みを知らない動物と何の違いがあるでしょうか? ある動物はたまに自分の主人に恵み返しをしたりします。 私たちはそんな動物よりよっぽど優秀じゃないですか。 そうじゃないですか? 私の話が間違ったら、反論してみてください。 以上です。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오늘 독서 말씀에서는 한나는 훗날 이스라엘의 예언자인 사무엘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아들을 낳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예물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 말씀에서는 마리아가 구세주를 잉태한 사실에 대해 감사와 찬미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둘 다 자기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렸다는 것은 동일합니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다름이 아니라, 한나는 자기 기도의 노력의 결과로 아들을 낳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마리아는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의 힘으로만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셨던 것입니다.
즉, 한 여인은 자기 노력으로 아들을 낳았고, 또 다른 여인은 자기 노력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세주를 낳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두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한나에게서 배울 수 있는데, 하느님에게 간절히 기도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과, 그리고 우리도 성모님처럼 하느님의 은총이 지금도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성사의 은총입니다. 특히 성체성사는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죠. 전적으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과 희생의 결과로 우리에게 무상으로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오늘 성모님처럼 우리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오로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으로 베푸시는 이 무한한 은총에 대해 감사와 찬미의 노래를 불러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만일 감사를 드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은혜도 모르는 짐승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어떤 짐승은 간혹 자기 주인에게 은혜를 갚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런 짐승보다 못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제 말이 틀렸다면 반박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2月25日 土曜日 主の降誕 夜半のミサ お説教

皆さん、今日のこの事件は本当に ものすごくすごい事件です。 それは、神様がまさに私たちと同じ人になったからです。
神様が人になりました。 全宇宙を創造された全能の神様がたかがほこりのような人になったということです。
このものすごく大きな事件が実はよく理解できないですよね?  例えば、皆さん、アリの群れを見たことがありますか。私たちよりものすごく小さなアリの群れが、食べ物を咥えて移動する群れを見たことがあると思います。
神様が、そんなアリの群れのようなわが人々が大好きで、神様が直接私たちのような人になったということです。
それで、私たちが毎朝起きて目をこすったり、トイレに行ってうんこをしたり、ご飯を食べて、シャワーを浴びたりなど、こんな細々しい日常を生きるために私たちのような人になったのです。
では、なぜ神様がそんなことをしてまで人間になろうとされたのでしょうか?
カトリック教会のカテキズムによると、もちろん私たちを罪と死から救うことで私たちを神様ご自分と共に永遠に生きられるようにするためです。
それでは、私たちを神様と永遠に生きられるようにするため、この世に人として来られたことが大きな目的なら、もう少し具体的に入って調べてみると、なぜ神様がここまで人になら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でしょうか?
それはまさに私たちと話したくて。 私たちと話したくて。 私たちと会話したくて、私たちと同じ人間になった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私たちの感情、考え、私たちの心を知ってこそ、初めて私たちを救うことができますから。
救いは他でもなく、人間関係を通してもたらされるものなんですよ。 人間関係の中で神の国は作られるものだからです。 人間関係の構築はどれだけ大変で難しいですか。 ところが、神様はこの大変で大変な人間関係を私たちと同じようにするために私たちと同じ人間になったのです。
神様として神の国の玉座に座って命令されることもできるでしょうに、あえて神様はこんな難しい方法を選んだのです。 その理由は神様が創造された人間がこれ以上楽園の外で苦労して生きることが心苦しくて。 私たちが住むここを楽園にするために、神様自ら直接人間になったのです。
したがって、神様が住んでいるここが天国であり、神の国というのです。 天国を、あの遠いところから、私たちの住む、この地に引きずり下ろしてきたのです。 だからこそ、今日の救い主のクリスマスは、ものすごくすごい事件だと言えるのです。
だから、生きている時に神様を自分の救い主として受け入れ、その方の教えに従わなければならないんじゃないですか。神様が直接この地上に降りてきて「ここが天国であり、楽園であり、神の国だ」と宣言されたからですね。
皆さんが見ているあの馬小屋は、神の国の王様の玉座です。 あの馬小屋が神の玉座であり、皆さんが足を踏み入れているここが天国です。
なぜなら、その神の国の王様がここにいらっしゃるからです。
「ローマに行けばローマの法を守るべきだ」という言葉がありますよね? 全宇宙の主である神様が、もうこの世にいらっしゃるのですから、ここが天国ではなく何でしょうか? ですから、私たちは天国に住んでいるので、天国の法律に従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ね?
天国の法に従いましょう。 そう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はないですか。 私の話が間違いましたか。 天国の法を優先的に守って従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 イエス様がおっしゃった福音が天国の法ではなく、何でしょうか。
天国には神々しか住めません。 神様は、私たちを天国に住む神にするために、神様が直接人間になったのです。 人間を神にするために。 なぜなら、天国には神々しか住めないから。 その神々は全宇宙の主である神様の法律を守りながら生きていく存在なんです。
ですから、天国の法である福音のみことばを受け入れて守りましょう。 最後に、救い主神の子、イエスキリストのクリスマスを心よりお祝い申し上げます。メリークリスマス。以上です。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여러분, 오늘 이 사건은 정말로 엄청나고 대단한 사건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느님이 바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어요. 이 온 우주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느님이 일개 먼지와도 같은 사람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 엄청나고 대단한 사건이 사실 피부로 잘 와닿지 않죠? 그래서 한 가지 예를 들면, 여러분, 개미 떼를 보신 적이 있으세요? 우리보다 엄청나게 작은 개미떼가 먹을 것을 입에 물고 이동하는 무리를 아마도 보셨을 겁니다.
하느님이요, 그런 개미떼 같은 우리 사람들을 너무 좋아하셔서 하느님이 직접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람들이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눈 비비고 , 화장실에 가서 똥싸고, 밥먹고, 씻고 하는 등 이런 자질구레한 일상을 살기 위해 우리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그럼 왜 하느님께서 그런 것을 하면서까지 사람이 되시고자 하셨던 것일까요?
교리서에서 가르치는 것은, 물론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부터 구원하여 우리을 당신과 함께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당신과 영원히 살게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신 것이 큰 목적이라면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알아보면, 왜 하느님께서 이렇게까지 사람이 되셔야 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와 말하고 싶어서. 우리와 이야기하고 싶어서. 우리와 대화하고 싶어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신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감정, 생각, 우리의 마음을 알아야 비로소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 테니까요.
구원은 다름 아닌 인간관계를 통해서 오는 것이거든요. 인간 관계 안에서 하느님 나라는 만들어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 맺기가 얼마나 힘들고 어렵습니까?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이 힘들고 어려운 인간관계를 우리와 똑같이 하시기 위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하느님으로서 하늘나라의 옥좌에 앉아 명령하실 수도 있으실텐데 굳이 하느님께서는 이런 어려운 방법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이 더 이상 낙원 바깥에서 힘들게 사는 것이 마음 아파서. 우리가 사는 이 곳을 낙원으로 만들게 하기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몸소 직접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살고 있는 이 곳이 바로 천국이요, 하느님 나라라는 것이죠. 천국을 저 먼 곳에서부터 우리가 사는 이 땅으로 끌고 내려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구세주의 성탄 대축일은 대단하고 엄청난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을 때 하느님을 나의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직접 이 지상에 내려 오셔서 "여기가 바로 천국이요, 낙원이요, 하늘나라다"라고 선포하셨는데 말이죠.
여러분이 보는 저 구유가 바로 하늘나라 임금님의 옥좌입니다. 저 구유가 하느님의 옥좌이고 여러분이 발 딛고 서 있는 이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왜냐하면 그 하늘나라 임금님이 바로 여기 계시기 때문이죠.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 있죠?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느님이 이제 이 세상에 계시게 되었으니 여기가 바로 천국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에 살고 있으므로 천국의 법을 따라야 하겠죠?
천국의 법을 따릅시다.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말이 틀렸습니까? 천국의 법을 우선적으로 지키고 따라야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음이 천국의 법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천국에는 신들밖에 살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천국에 사는 신이 되게 하기 위해 당신이 직접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인간을 신이 되게 하기 위해. 왜냐하면 천국에는 신들 밖에 살 수 없으니까. 그 신들은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법을 지키고 따르며 사는 존재들이거든요.
그러므로 천국의 법인 복음 말씀을 받아들이고 지키고 따릅시다. 마지막으로 구세주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메리크리스마스. 이상입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小野幌教会の鐘の音

2022年1月1日神の母聖マリアの祝日 ミサ

2022年1月2日日曜日 主の公現(祭日)ミ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