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年10月1日金曜日 聖幼いイエスのテレジア お説教

今日の第一朗読のみことばは、旧約のイスラエルの民がバビロンに連れて行かれて奴隷になったとき、イスラエルの民が過去の自由を受けていたとき、神のみことばのとおりに実践して生きていなかったときを反省して悔い改めた、信仰告白文だと言えます。
イスラエルの民は自由を受けていた時は、神様に仕えず偶像崇拝に陥っていました。 そうして自由を奪われた時に、はじめて自分たちがいかに神様に罪を犯したかを悟ったのです。
しかし、再び自由を奪われ、さらには自分たちの中に神の子が来て、たくさんの奇跡を起こしたにもかかわらず、神に悔い改められなかったイスラエルの民がいました。 彼らがまさに今日、福音のみことばでイエス様が叱ったコラジン、ベトサイダ、カファルナウムの人々でした。
正確に言えばイエス様が怒ったというよりイエス様の心がもどかしくてただイエス様一人でコラジンとベトサイダとカファルナウムが見える丘に登って泣きながら嘆いたのです.
いくら説教して奇跡を見せても悔い改めず、変化しない彼らの姿はどれだけもどかしかったでしょうか?
もしかしてですが。 皆さん、イエス様はもし皆さんを見つめながら、同じように泣きながらもどかしく思わないでしょうか?
いくら説教を聞き、ご聖体を迎えても悔い改めず、行動に変化のない私たちを見つめるイエス様の心が、どうかわかりません。
これから私たちが生きる唯一の方法は、ほかでもなく今日の第一朗読のみことばで聞いた通り、バビロンの奴隷の生活に引きずられてきたイスラエルの民が涙の悔い改めをしたように、私たちも神のみことばを実践できず、自分の本能のままに生きている自分自身の姿について反省し、悔い改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の道しかありません。 我々が神の前に帰る前に、我々が備えなければならない態度は、他でもなく悔い改める生活しかないということです。
今日の朗読と福音のみことばの核心メッセージでした。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오늘 제1독서 말씀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에 끌려가 유배 생활을 하였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 자유를 누리고 있었을 때 하느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며 살지 않았던 때를 반성하며 회개하였던 일종의 신앙 고백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유를 누리고 있었을 때에는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 숭배에 빠져 있었죠. 그리하여 자유를 빼앗기던 때에야 비로소 자신들이 얼마나 하느님께 죄를 지었는지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또다시 자유를 빼앗기고 심지어 자기들 가운데에 하느님의 아들이 직접 오셔서 많은 기적을 보여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회개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혼내신 코라진, 베싸이다, 카파르나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예수님이 혼냈다기 보다는 예수님의 마음이 답답해서 그냥 예수님 혼자 코라진과 벳싸이다와 카파르나움이 보이는 언덕에 올라 가 우시며 한탄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강론을 하고 기적을 보여줘도 회개하지 않고 변화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답답하였을까요?
혹시 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혹시 여러분을 바라보며 마찬가지로 울며 답답해 하시지는 않을까요?
 강론을 듣고 성체를 모셔도 회개하지 않고 행동의 변화가 없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할 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살아야 할 유일한 방법은 다름아닌 오늘 제1독서 말씀에서 들은 대로 바빌론에 유배 생활로 끌려 온 이스라엘 백성이 눈물의 회개를 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고 내 본능대로 살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에 대해 반성하고 회개하여야 하겠습니다. 그 길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 가기 전에 우리가 갖추어야 할 태도는 다름 아닌 회개하는 생활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의 핵심 메시지였습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0月2日土曜日 守護の天使 お説教

今日は守護の天使の記念日です。
私たち一人一人にはそれぞれ守護の天使がいます。
ところで、守護の天使が何をしているか知ってますか?
それは今日の朗読のみことばにすべて出ています.
朗読のみことばをもう一度読んでみてください。
まず、守護の天使は私たちを守ってくれます。
二番目、守護の天使は永遠の命のあるところへと私たちを案内してくれます。
三番目、神の代わりにその時その時その状況に合わせて神のみことばを伝えてくれます。
最後に、私たちの祈りを神様に伝えてくれます。
それでは、私たちが守護の天使のためにすべきことは何か知ってますか?
それは私たちが彼の言うことを無視せずによく従うことです。
それでは今日、私たち、私たちの守護の天使に捧げるお祈りをしてみましょうか。

오늘은 수호천사 기념일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저마다 다 수호천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수호천사가 무슨 일을 하는 지 알고 있습니까?
그것은 오늘 독서 말씀에 다 나와 있습니다.
독서 말씀을 다시 한번 읽어 보세요.
첫째, 수호천사는 우리를 지켜 줍니다.
둘째, 수호천사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줍니다.
셋째, 하느님을 대신해서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해 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께 전달해 줍니다.
그럼 우리가 수호천사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아나요?
그것은 우리가 그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잘 따르는 것입니다.
그럼 오늘 우리, 우리의 수호천사에게 수호천사에게 바치는 기도 한번 해 볼까요?

週の祈り(木)守護の天使に向かう祈り

 第一木曜日は、守護の天使にささげられています。それは、私たちが守護の天使を知り、霊的、物的危険に際して悪魔のわなから免れ、天の国に導こうとする天使のやさしい心遣いに従うためです。

守護の天使

  1. 天の父よ、限りないいつくしみに感謝します。
    あなたはわたしを造られた時から、わたしを照らし、守り、支え、
    導くよう守護の天使にゆだねてくださいました。
    わたしを守るみ使いよ、あなたに感謝します。
    あなたは、わたしが天の父のもとに帰るまで
    絶えず旅路をともにしてくださいます。
    また、わたしに聖なる勧めを与え、あらゆる危険から守り、
    主のみもとで力強い祈りをささげ、
    わたしに、深い慰めと確かな希望を与えてくださいます。

    ▼わたしを守る神のみ使いよ、
     主のあわれみによってあなたにゆだねられたわたしを、
     照らし、守り、支え、導いてください。
  2. わたしを守るみ使いよ、
    あなたは主のみもとで、常に、わたしが天の国に入ることを
    望んでおられます。
    しかし、わたしは、たびたびあなたの勧めに背いて罪を犯し、
    あなたが身近におられることを忘れます。
    わたしのために、主のゆるしを求めてください。

    ▼わたしを守る神のみ使いよ、
     主のあわれみによってあなたにゆだねられたわたしを、
     照らし、守り、支え、導いてください。
  3. わたしの守り手、神のみ使いよ、
    忠実で力強いあなたは、天において聖ミカエルに率いられ、
    サタンとこれに従うものに打ち勝たれました。
    かつて天で行われた戦いは、今も地上で続けられ、
    悪の頭とこれに従うものはイエスにはむかい、
    人びとを悪に陥れようとしています。
    サタンの国と戦う神の国、教会のために、
    汚れない使徒の女王マリアに祈ってください。
    大天使ミカエル、戦いの時にわたしたちを守り、
    悪魔の狡猾なはかりごとに打ち勝つ力となってください。
    人びとを滅ぼそうと世にはびこるサタンと悪霊を、
    神の力によって地獄に封じてください。

    ▼わたしを守る神のみ使いよ、
     主のあわれみによってあなたにゆだねられたわたしを、
     照らし、守り、支え、導いてください。
  4. 天の国のみ使いよ、
    視聴覚活動の企画、製作、普及にたずさわる人と
    これらを利用するすべての人を守ってください。
    かれらを悪から守り、真理に導き、まことの愛に生かしてください。
    社会的コミュニケーション・メディアの使徒職に必要な働き手を主に願い、
    使命の遂行にあたってはかれらとともにいてください。
    すべての人に、働きと祈りと献金をもって、
    この使徒職に協力する熱意をおこさせてください。
    視聴覚活動によってこの世の生活が高められ、
    人類が永遠の幸せに向かうことができるよう
    この分野を照らし、守り、支え、導いてください。

    ▼わたしを守る神のみ使いよ、
     主のあわれみによってあなたにゆだねられたわたしを、
     照らし、守り、支え、導いてください。
  5. すべてのみ使いよ、
    あなたがたは尊い群れをつくり、三位一体の神に絶え間なく賛美をささげ、
    わたしたちの忘恩を償うために召されました。
    神と人びとを愛し、
    「いと高きところには栄光、神にあれ、地には平和、御心に適う人にあれ」
    と歌い続けておられます。
    全人類が唯一まことの神と、神から遣わされた御子、
    および真理の柱である教会を認め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願います。
    神のみ名が聖とされ、イエス・キリストのみ国が到来し、
    み旨が天と同じく地でも行われるよう祈ってください。
    為政者、労働者、苦しむ人びとの上にご保護の手をのべ、
    真理と正義と平和を求めるすべての人の上に、祝福と救いを求めてください。

    ▼わたしを守る神のみ使いよ、
     主のあわれみによってあなたにゆだねられたわたしを、
     照らし、守り、支え、導いてください。

『パウロ家族の祈り』より

守護の天使に向かう祈りの韓国語のバージョン

수호천사에게 바치는 기도

수호천사에게 드리는 기도

○언제나 저를 지켜주시는 수호천사여,

인자하신 주께서 저를 당신께 맡기셨으니,

오늘 저를 비추시고 인도하시며 다스리소서. 아멘

○하느님께서 저를 당신의 보호에 맡기신

하느님의 거룩한 천사시여,

저의 육신과 영혼에 나타내 보인

당신의 모든 선행에 대해 감사드리나이다.

당신이 저를 이렇게 충실히 도와주시고,

모든 원수에 맞서 지켜 주시니

당신을 찬미하며 기리나이다.

그리고 당신이 저의 피난처, 보호자, 후원자가 된

그 시간을 축복 하나이다.

당신은 언제나 저를 돌보고 염려하며

사랑을 베풀어 주면서

끊임없이 저의 구원을 도와주시나이다

청하오니,

제가 자주 당신의 영감을 거역하고

사랑하는 친구인 당신을 슬프게 했음을 용서하소서.

앞으로는 당신께 순종하고

저의 하느님을 더욱 충실히 섬길 것을 굳게 결심하나이다.

아멘

- 성녀 젤투르다

2021年10月3日 日曜日 年間第27主日 お説教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は、イエス様は突然結婚について話したのではありません。
ファリサイ派の人々が、今回はモーセの律法の中に離婚に関する法を押し付けて、イエス様を逮捕する口実を作ろうと質問したのです。
この前には安息日に関する法を押し付けて、今度は離婚に関する法を押し付けてイエス様を試そうとしました。
本当にしつこいですね?
しかし、今回もイエス様ははっきりお答えになりました。
「離婚はダメ。 本来男と女は神様が結んでくれた助ける者だよ。 だから人間勝手に離婚してはいけない。 不倫もダメ。 あなたたちが頑固なので、モーセが離婚に関する法を作ってくれたけど、原則的にはダメなんだよ」と言われました。
だから、教会も離婚を許すわけではないけど、不倫や暴力の場合、やむを得ず社会法的に離婚した人たちの場合、一方の配偶者が死ぬまでは、まだ神の前にいる夫婦ですから、再婚を禁じているのです。 もしこれを破って再婚した人々がいるならその人は自動的に秘跡禁止処罰を受けます。 でも、離婚した配偶者が亡くなれば、生きている残りの配偶者は結婚の絆から自由に解放されることになるのです。
もし、離婚したカップルの中に一方の配偶者が生き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再婚した信者がいる場合は、直ちに教会の主任司祭に知らせなければなりません。 皆さんの中にそんな方いませんよね?
いずれにせよ、神様は少し怒っているようですが、結婚の大原則について明確に説明してくださいました。
そして、子供たちがイエス様のそばに来られないように叱った弟子たちを逆に叱り、何度も問い詰め、信じることができないファリサイ派の人々より、単純にイエス様のみことばを信じて従う子供たちを抱いてくださり、どうかお願いだから、この子供たちのようになりなさいと最後に頼みました。 「問い詰めないで、子供たちのように単純にイエス様のみことばを聞いて信じなさい」と。
そして子供たちに手を置いて祝福してくださいました。
子供のような人たちになりましょう。 皆さん。神のみことばを問い詰めないで、単純に信じて受け入れる子供たちのようになりましょう。 それがわが主イエス·キリストが私たちに望んでおられる最も大きな神の望みだと思います。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の核心メッセージでした。 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오늘 복음 말씀은요, 예수님께서 갑자기 혼인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이번엔 모세 율법 중에 이혼에 관한 법을 들이밀며, 예수님을 체포할 구실을 만들려고 질문한 것입니다.
지난번에는 안식일에 관한 법을 들이밀더니, 이번에는 이혼에 관한 법을 들이밀며 예수님을 시험하려 했습니다.
정말 끈질깁니다. 그죠?
그러나 이번에도 예수님께서는 아주 명쾌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이혼은 안돼. 본래 남자와 여자는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짝이야. 그러니까 인간 마음대로 이혼해선 안돼. 불륜도 안돼. 너희들이 고집이 쎄서 모세가 어쩔 수 없이 이혼에 관한 법을 만들어 주었지만, 원칙적으로 안되는 거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이혼을 허락하진 않지만, 불륜이나 폭력의 경우 어쩔 수 없이 사회법적으로 이혼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한 쪽의 배우자가 죽기 전까지는 여전히 하느님 앞에 있는 부부이므로 재혼을 금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을 어기고 재혼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동적으로 성사 금지 처벌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혼한 배우자가 죽으면 살아 있는 나머지 배우자는 혼인의 유대에서 자유롭게 풀려나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이혼한 커플 중에 한 쪽 배우자가 살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재혼한 신자가 있다면 즉시 본당 주임 신부에게 알려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 그런 분은 안계시죠?
하여간 예수님께서는 조금 화나신 듯해 보이지만, 혼인의 대원칙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어린이들이 예수님 곁에 오지 못하도록 혼낸 제자들을 역으로 혼내시며, 자꾸 따지고 믿지 못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단순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어린이들을 안아 주시며 제발 부탁이니 이 어린이들처럼 되어라고 마지막으로 부탁하셨습니다. 따지지 말고 어린이처럼 단순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라고 말이죠.
그리고나서 어린이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습니다.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이 됩시다. 여러분. 하느님의 말씀을 따지지 말고 단순하게 믿고 받아들이는 어린이들처럼 됩시다. 그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가장 큰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2021年10月4日月曜日 聖フランシスコ(アシジ)の記念日 お説教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を核心だけ簡単に要約して話します。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が私たちに伝えてくれるメッセージは、ほかでもなくこれです。
まず、困った状況にある人を知らないふりするなということです。
二番目、困った状況にある人を見つかったらすぐ行動しろということです。
三番目、助けをあげる時には具体的にあげろということです。
四番目、自分が行動した施しの行為には最後まで責任を負って頑張れということです。
最後に、補償を望むな、ということです。
イエス様は施しや善行をする時にはこうしろと具体的な例を挙げて教えてくださいました。
今日は聖フランシスコの祝日です。
聖フランシスコは、まさに今日の福音の良いサマリア人のように具体的にその時代の最も困った状況にあった、つまり、皮膚病で患っている人々の面倒を見てくださいました。
私たちも今の時代の一番困った状況にある人々、例えばホームレス、いじめにあった人々、病者、抑圧された女性、食事も飢えている子供やお年寄り、他国に来て苦労している外国人などに具体的に近づいて、彼らのために献身しなければならないではないでしょうか。
少なくとも知らないふりはしてはいけません。 そして発見したら直ちに助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
以上です。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の核心メッセージでした。 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오늘 복음 말씀을 정말로 간단하게 핵심만 요약하여 말하겠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는 다름 아닌 이것입니다.
첫째, 곤경에 처한 사람을 모른체 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둘째, 곤경에 처한 사람을 발견하면 즉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셋째, 도움을 줄 때에는 구체적으로 주라는 것입니다.
넷째, 본인이 행동한 자선 행위에 책임을 마지막까지 지고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댓가를 바라지 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선이나 선행을 할 때에는 바로 이렇게 하라고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은 성 프란치스코의 축일입니다.
성 프란치스코께서는 바로 오늘 복음 말씀의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구체적으로 그 시대의 가장 곤경에 처한 이, 즉, 나병환자들을 돌보셨습니다.
우리도 우리 시대의 가장 곤경에 처한 이들, 예를 들어 노숙자들, 그리고 왕따 당한 이들, 병자들, 억압받는 여성들, 자주 끼니를 굶는 어린이들과 노인들, 타국에 와 고생하는 외국인들 등에게 구체적으로 다가 가 그들을 위해 헌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모른체하지는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발견 즉시 도와주어야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의 핵심 메시지였습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0月6日 水曜日 年間第27水曜日 お説教

天におられるわたしたちの父よ、
み名が聖とされますように。
み国が来ますように。
みこころが天に行われるとおり地にも行われますように。
わたしたちの日ごとの糧を今日もお与えください。
わたしたちの罪をおゆるしください。わたしたちも人をゆるします。
わたしたちを誘惑におちいらせず、
悪からお救いください。
神の子イエス·キリストは弟子たちにどうお祈りすれば良いか一番最高の祈りの模範の例を教えてくださいました。
イエス様はこれからあなた自身に従う弟子たちはこのように祈りなさいと具体的に例を挙げて教えてくださいました。
だから教会は、今まで主イエス様が教えてくださったこの祈りを絶えず祈っていて、またお勧めしています。
今日の朗読のみことばで預言者ヨナのように祈ることができます。 まるで友たちのように神様に文句を言ったりすることもあります。 でも、この例は良い例ではありません。 文句そのもので終わるのは自分の訴えであって、正しい祈りではないからです。
わが主イエス様もゲッセマニの園で祈る時 「できるならこの時間を避けたいですが、しかし私の願いではなく、神のみこころのままに行ってください」と祈ったように、私たちがする祈りの最後はいつも神様のみこころがかなうように願うことです。
神のみこころがこの世で叶えば、我々の願いも自動的に叶うのが当然だからです。 なぜなら、神様は人をとても愛するからです。
次に、我々が求めるべきことは、毎日イエス·キリストの御体が自分の魂の糧になるように願うことであり、毎日の自分の罪と、そして他人に対する赦し、そしていつも悪魔の誘惑に陥らないよう願うこと、後日永遠の悪の縄張りに行かないよう願うことだと言えます。
主イエス·キリストが直接判断して教えてくださいました。 我々が神に祈るべきことは、ほかでもなくこれだけだと。
ですから、絶えず主イエス様が教えてくださったこの主の祈りを何度も、ゆっくり、繰り返し、継続的に捧げましょう。 十字架の前でも、ご聖体の前でも、道を歩きながらなど、時と場所を選ばず、絶えず祈りましょう。 この主の祈りで、たゆまず祈りませんか?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어떻게 기도하면 좋은 지 가장 최고의 기도의 모범 사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구체적으로 그 예를 들어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지금까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기도를 꾸준히 바치고 있고 또 권장하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 말씀에서 예언자 요나처럼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마치 친구처럼 하느님께 불평을 쏟기도 하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례는 좋은 사례가 아닙니다. 불평 그 자체로만 끝나는 것은 자기 하소연이지 올바른 기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할수만 있다면 이 시간을 피하고 싶지만,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하셨듯이, 우리가 하는 기도의 마지막은 언제나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청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뜻도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무척 사랑하시기 때문이니까요.
그 다음에 우리가 청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매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내 영혼의 양식이 될 수 있도록 청하는 것이며, 매일 짓는 나의 죄와 그리고 다른이에 대한 용서, 그리고 언제나 악마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청하는 것과 훗날 영원한 악의 은신처에 가지 않도록 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판단하셔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에게 기도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이것 뿐이라고.
그러므로 끊임없이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주님의 기도를 자주 천천히 반복적으로 꾸준히 바칩시다. 십자가 앞에서든, 성체 앞에서든, 길을 가면서 등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꾸준히 기도합시다. 이 주님의 기도로 꾸준히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2021年10月8日金曜日 年間第27金曜日 お説教

人々は、イエス様が悪魔を追い払ったことについて、「一体誰の力で悪魔を追い払ったのか」知りませんでした。
人の目から見ると、きっとナザレという田舎町の青年に過ぎませんが、悪魔を追い払っているから、とても不思議だったでしょう。
そのためなのか、人々は悪魔を、悪魔たちの中に隊長ほどにならないと、悪魔を追い払うことができないのではないかと思ったようです。
でも、イエス様ははっきりおっしゃいました。
「わたしは神の指で悪魔たちを追い払っているのだ」と。
神の指は、神の力を指します。
天地創造の時、父である神様があなた自身の指で世の中を創造されたように、今日の福音でも、神の子、イエス様は父である神の指で悪魔を追い払ったのです。
そのようにお話しながら、悪魔たちの特徴についておっしゃいました。 確かにイエス様が悪魔たちを追い払いましたが、その人のところから離れた悪魔たちは留まるところを見つけられず放浪し、その人の魂がきれいなのを見つけて再び入るのに今度は前よりもっと酷い悪魔たちを連れて来て、その人の中に入り込んで住み着くとおっしゃいました。
今日のこのみことばについて私たちは何を悟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か。
一つ確かなことは、この世にいる限り、我々は悪魔の誘惑と攻撃に自由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
それではこれから私たちはどうすればいいでしょうか?
まさに神の指で悪魔を追い払ったイエス様に頼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して、いつでも悪魔たちが私たちの弱い部分を選んで攻撃してくるかもしれないから、常に祈りで武装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特に悪魔が一番嫌悪し、恐れるロザリオの祈りで武装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ロザリオの祈りは悪魔をやっつける一番強い武器だからです。
ですから、ロザリオの祈りをしばしば、たびたび祈るようにしましょう。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악마를 쫓아 내신 것에 대해서 도대체 누구의 힘으로 악마를 쫓아 내는지 몰랐습니다.
사람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분명 나자렛이란 시골 마을의 청년일 뿐인데, 마귀를 쫓아 내고 있으니 무척 신기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사람들은 마귀들을 두목 정도는 돼야 마귀들을 쫓아 낼 수 있지 않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죠.
"나는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 내고 있는 것"이라고.
하느님의 손가락은 바로 하느님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천지창조 때 성부 하느님께서 당신의 손가락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오늘 복음에서도 성자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 내신 것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마귀들의 특성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분명히 예수님께서 마귀들을 쫓아내셨지만, 그 사람에게서 나간 마귀는 머물 곳을 찾지 못하고 떠돌다가 그 사람의 영혼이 깨끗한 것을 발견하고 다시 들어가는데 이번에는 전보다 더 지독한 마귀들을 데리고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의 이 말씀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깨달아야 하겠습니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세상에 있는 한 우리는 마귀의 유혹과 공격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 내신 예수님에게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라도 악마들이 우리의 약한 부분을 골라 공격해 올지 모르니  늘 기도로 무장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마귀들이 제일 혐오하고 무서워하는 묵주기도로 무장해야 하겠습니다. 묵주기도는 악마를 해치우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묵주기도를 자주 많이 수시로 틈만 나면 바치도록 합시다.

 

 

 

 

2021年10月10日 日曜日 年間第28主日

皆さんも知ってるように私は家がありません。 今現在、小野幌教会の司祭館に住んでいるんですけど、私の家ではありません。 いつでもここから離れという命令が来たら離れ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して、私は一人子だから、兄弟や姉妹はいません。 そして父は、私が高校の時に亡くなって、母だけ韓国のソウルに一人で住んでいます。 一人子として一人でいらっしゃる年取った母の面倒を見なければなりませんが、私は今、日本の宣教のためにここ、札幌に来ています。
もちろん結婚していないから妻も子供もいません。 もちろん家もないし、私名義の土地もありません。
このように私は、わが主イエス様が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の最後でおっしゃったとおりに生きています。
このような私にわが主イエス様は約束しました。 世で迫害も受けるが、家、兄弟、姉妹、母、父、子供、畑を百倍も受けるだろうし、後日永遠の命を受けるだろうと約束しました。
たとえ私の家はないけど、神父を辞めない限り、私が着任していく教会のごとに泊まれる司祭館があります。 そして兄弟と姉妹のない一人子だけと、会う信者たちがみんな私の兄弟、姉妹、母、父です。 妻と子供はいないけど、妻と子供のように私の味方になってくれた人々がいます。 それから、私名義の土地はないけど、今、私が足で踏んでいるこの地があります。
何も持っているのがないけど、私は実は全部持っています。 そして、これから私には永遠の命が待っているでしょう。
だから何も持っていないと文句を言う人たちに申し上げます。 たとえこの世には何も持っていないかもしれないけど、よく考えてみてください。 皆さんは、全部持っています。
そして一つ確かなのは、金持ちは本当に神の国に入りにくいということです。 これはイエス様のみことばの通りです。 持っているものが多ければ多いほど、他人のために奉献したり、施ししたりするのは非常に難しいということです。 犠牲しにくいということです。 そのうえ、永遠の命の保障を受けることは非常に難しいことです。
持っているものを貧しい人々に渡し、神の国という永遠の命を手に入れるために努力してください。 今この世の中でたとえ飢え死にすることはできますが, 代りに永遠の命が待っているからです。 私たちがあまり感じていないけど、実は世の中は急速になくなっていっています。 早く消えていくこの世で生きることだけに努力しますか。 それとも、永遠に消えない神の国で暮らすことで努力しますか。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を無視しないでください。 「神の言葉は生きており、力を発揮(はっき)し、どんな両刃(おろは)の剣(つるぎ)よりも鋭(するど)く」。神様、そして神の子のおっしゃったのは、100%すべて叶います。 もう一度言いますが、金持ちは神の国に入りにくいです。申し訳ないですけど。

여러분도 알다시피 전 집이 없습니다. 지금 현재 코놋포로 성당 사제관에 살고 있지만 제 집이 아니죠. 언제든지 떠나라는 명령이 오면 떠냐야 합니다. 그리고 전 본래 외동아들이니 형제나 자매는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제가 고등학교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만 대한민국 서울에 홀로 살고 계십니다.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로서 홀로 계신 연세 드신 어머니를 돌봐드려야 하지만, 저는 지금 일본 선교를 위해 여기 일본 삿포로에 와 있습니다.
물론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부인도 자녀도 없습니다. 물론 집도 없고 제 명의의 땅도 없습니다.
이렇게 저는 우리 주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 말씀의 마지막에서 말씀하신 대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제게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나 아버지와 자녀와 토지를 백배나 받을 것이고 훗날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비록 제 집은 없지만 신부를 그만두지 않는 한 제가 부임해가는 성당마다 머물 수 있는 사제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형제와 자매가 없는 외동아들이지만 만나는 신자들이 다 내 형제요 자매들, 어머니들 아버지들입니다. 부인과 자녀는 없지만 부인과 자녀처럼 내 편이 되어 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 명의로 된 땅은 없지만, 지금 내가 발로 딛고 서 있는 이 땅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전 사실상 다 가졌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제게는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에게 말씀 드립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 수 있겠으나, 잘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다 가졌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확실한 건 부자들은 진짜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이건 예수님 말씀 그대로입니다. 가진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헌이나 자선하기 참 어렵다는 것입니다. 희생하기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게다가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기란 참 어렵습니다.
가진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어 주고 하늘나라라는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는 데 더 노력하십시오. 지금 이 세상에서 굶어 죽을 수는 있겠지만, 대신에 영원한 생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해서이지 사실 이 세상은 빠르게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 빠르게 사라져 가는 이 세상에서 사는 데에만 힘쓰시겠습니까? 아니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하늘나라에 사는 데에 힘쓰시겠습니까?
오늘 복음 말씀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하느님 그리고 하느님의 아들께서 말씀하신 것은 100%다 이루어집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죄송한 얘기지만.

 

 

 

 

2021年10月11日 月曜日 年間第28月曜日 お説教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でイエス様は群衆を見つめながら「今の時代の者たちはよこしまだ」と、その時代の人々を評価しました。
なぜなら、その時代の人々には基本的にイエス様のみことばを「聞く心」がなかったからです。
ただイエス様の不思議な奇跡やしるしだけを見るために集まってきたからです。でも、逆にイエス様の褒めを聞いた人々がいます。 ソロモンの知恵を聞くために、 アフリカの南の国から来た南の国の女王です。
そして預言者ヨナの説教を聞いて悔い改めたニネベの人々です。
この二つの種類の人々がイエス様の褒めを聞いた理由は他でもなく彼らには「聞く心」があったからでした。
それでは今現在、わがキリスト信者たちはどうでしょうか。 私たちには、イエス様のみことばを「聞く心」が果たしてありますか? もし、私たちにも「聞く心」があるならば、教会の中に陰口やいじめ、そして無関心などが存在しなかったでしょう。
私たちの中に相変わらずそのようなものが消えていないなら、私たちは耳では神のみことばを聞きますが、その心は相変わらず他のとんでもない所に行っている証拠になります。 つまり、私たちにも神のみことばを「聞く心」がないという結果になるのです。
時々ある人々はミサの途中聖堂に入ってくる人々もいます。 祭壇から第一朗読、第二朗読、福音のみことばが宣言され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第一朗読が終わって入ってくる人々がいる一方、または朗読のみことばが宣言され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集中せずに他の行動をする場合をたくさん見ました。
さらに説教が終わってから入って来る人たちをたくさん見ました。
これは、まだ私たちの中には、神のみことばを「聞く心」が足りないという証拠です。 足りないあるいは、そんな心がないということです。
最後にお願いします。 少なくとも一つだけ忘れないでください。「聞く心」を持ってください。 耳でだけ聞かないで、どうか神のみことばを「聞く心」で聞いてほしいです。 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을 바라보시며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라고 하시며 그 시대 사람들을 평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예수님의 신기한 기적이나 표징만을 보기 위해 몰려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님의 칭찬을 들은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먼 아프리카 남쪽 나라에서 온 남방 여왕이죠.
그리고 요나 예언자의 강론을 듣고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입니다.
이 두 부류가 예수님의 칭찬을 들은 이유는 다름 아닌 그들에게는 '듣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습니까?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마음'이 과연 있습니까? 만일 우리에게도 '듣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 본당 내에서 험담이나 뒷담화나 왕따, 그리고 무관심 등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안에 여전히 그러한 것들이 없어지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귀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만 그 마음은 여전히 다른 엉뚱한 곳에 가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즉, 우리에게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마음'이 없다는 결과가 되는 것이죠.
간혹 어떤 이들은 미사 중간에 들어오는 이들이 있습니다. 제단에서는 제1독서, 제2독서, 복음 말씀이 선포되는데도 불구하고 제1독서가 끝나고 들어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혹은 독서 말씀이 선포되는 데도 불구하고 집중하지 않고 다른 행동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심지어 강론이 다 끝나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많이 봤습니다.
이는, 아직도 우리 안에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마음'이 부족하다는 증거입니다. 부족하거나 그런 마음이 없다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한 가지 '듣는 마음'을 꼭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귀로만 듣지 말고 꼭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마음'을 간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0月13日水曜日 年間第28水曜日 お説教

今日の朗読のみことばと福音のみことばで、使徒パウロとイエス様はその時代の宗教人たちの偽善的な姿について加減なく批判しました。
そのため、使徒パウロとイエス様は当時、宗教人から憎まれました。
イエス様が人間でいた時代には、当時の宗教指導者たちが、本当に重要な神の愛の掟については教えもせず、実践もしないくせに信者たちが献金をたくさん出すよう強要することと、宗教指導者たちの権威主義的な姿、そして律法の専門家たちは律法を守らないくせに信者たちにだけ強要する姿について、加減なく批判しました。
そして使徒パウロが生きた時代には、人々が互いに裁き合って呪いをかけた文化がほとんどだった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他人を裁く自分たちも、いざ同じ罪を犯すくせにお互いに相手がもっと悪いと非難していた文化がほとんどだったため、使徒パウロはそれを加減なく批判した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今現在はどうですか。
今現在では、2000年前にイエス様と使徒パウロが批判したことを合わせてもっと酷いことを宗教人たちがやっていますよね?
この社会の中でいじめ、虐待、侮辱、無関心などどれほど深刻に広がれていますか。
神様は、人間たちが世の中で生きている間には、慈愛と寛容と忍耐で、人間が悔い改めるように絶えず教えるでしょう。 でも、人間がそれぞれ神の裁きの前に行ってはどうなるでしょうか。もし、死ぬまで悔い改めずに今まで生きてきた通りに生きてきたか、この社会で広がれている悪い文化の中で変化せずにそのまま生きて死んだら、その次に神の裁きの前で果たしてどうなるでしょうか。
だから、生きているうちに悔い改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毎日自ら自分の良心を反省し、神様に感謝すべきことと神様のみ旨に背いて生きたことはなかったか、毎日反省して生き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2021年10月15日 金曜日 年間第28金曜日 お説教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の核心メッセージは、ほかでもなく、体を殺しても、その後、それ以上何もできない者、すなわち、人間を恐れては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 その代わり、体を殺した後で、地獄に投げ込む権威を持っている方、すなわち父である神様を恐れなさいということです。
ところが果たして父である神様が、私たちが地獄に投げられるように放っておくでしょうか? 神の子、イエス様がおっしゃいましたよね? スズメたちも記憶していますが、スズメより私たちがもっと貴重だとおっしゃいましたよね?
だから皆さん、罪を犯すのはやめましょう。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は、単純にファリサイ派の人たちの偽善だけに気をつけろということではありません。
わがキリストの弟子たちも彼らのようにそうなり得るので、あらかじめ予防のために注意をくださったのだと思います。 特に私たちが暗闇で言ったこと、奥の間で耳にささやいたことは何でしょう? これは、私たちが密かに行った陰口が、結局は世の中の人々がみんな聞くようになるということです。
自分が密かに言った陰口が、世界中にアナウンスされていると思ってみてください。 その時になると、父である神様も私たちが地獄に放り出されることを防ぐことはできないでしょう。 そうなればどんなに悲しいことでしょう。 そうなってはいけないんじゃないですか。
だから皆さん、陰口はやめましょう。 「陰口だけたたかなくても天国に行ける」というフランシスコ教皇様のお言葉を忘れないようにしましょう。 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오늘 복음 말씀의 핵심 메시지는 다름아닌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 즉 인간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는 것입니다. 그 대신에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 즉 성부 하느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성부 하느님께서 우리가 지옥에 던져지도록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성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참새들도 기억하시는 데 참새들보다 우리가 더 귀하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여러분, 죄짓지 맙시다.
오늘 복음 말씀은 단순히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위선만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그들처럼 그렇게 될 수 있으니 미리 예방 차원에서 주의를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가 어두운 데서 한 말,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다름 아닌 우리가 남몰래 행한 뒷담화가 결국에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몰래 말한 뒷담화가 온 세상에 알려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때가 되면 성부 하느님께서도 우리가 지옥에 던져지는 것을 막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그렇게 되면 안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뒷담화 하지 맙시다.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합시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上の写真は「陰口だけたたかなくても私たちは聖人になります」

      という意味です。

2021年10月17日 日曜日 年間第29主日 お説教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でイエス様の弟子たちは - もちろんゼベダイの子ヤコブとヨハネを含みです - イエス様に従った目的がイエス様が植民支配していたローマを滅ぼしてイスラエルの王になってイスラエルを治めると思ったようです。
それで彼らはみんなそれぞれイエス様の隣でイエス様の権力を分けてもらうことになると想像していたようです。 その中に、公にイエス様にお願いをした弟子たちがいました。 まさにゼベダイの子、ヤコブとヨハネでした。
でもイエス様はおっしゃいました。 「それはあなたがたの考え方が非常に間違ったよ。 わたしはそんなことをするためにこの世に来たのではない。わたしは人々に仕えるために世の中に来た。 人々に仕え、身代金として自分の命を献げるために世の中に来た。分かった?」とおっしゃいましたよね?
そして続いて弟子たちにおっしゃいました。 「あなたがたもわたしに従うために来たいなら、わたしのように人々に仕え、身代金を献げて犠牲を覚悟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おっしゃいました。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は、イエス様のアイデンティティ、さらにはわがキリスト者のアイデンティティをはっきり教えてくださいました。 私たちのアイデンティティは、「仕えること」です。 人々に仕え、お互いのために犠牲になることだと。
旧約聖書でも預言されていましたね。将来人間を救うメシアは人間のために犠牲になる償いの献げ物になる方だと。 はっきり私たちは第一朗読のみことばで聞きました。
だから、皆さん、イエス様は罪を犯されなかったが、しかし全ての面で私たちと同じように誘惑と試練を受けた方です。 例えば今現在、私たちはコロナ禍でお互い大変な時代を生きています。 コロナにかかった人々もいるでしょうし、コロナで生活が苦しくなった人々も結構います。それからコロナのために孤独やうつ病で命を絶ってしまう人々も多くなりました。
時々私たちはイエス様にこのコロナウイルスを無くしてくださいとお願いしたいと思うでしょう。 神様だから。 でも、わが主イエス様はそんなことをするために私たちと一緒にいらっしゃる方ではないでしょう。 イエス様は、今日の福音でおっしゃったように、今もコロナのために苦しんでいる人々と一緒におられるし、また地球を汚染で汚した人間の身代金としてご自分の命を献げるために、私たちと一緒にいらっしゃる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そしてキリスト者たちを促し、私たちが自分でコロナ禍で苦しんでいる人々に、喜んで行って彼らに仕えるように勇気を吹き込んでおられる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が。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の核心メッセージでした。 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 물론 제배데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포함해서 입니다 - 예수님을 따라다닌 목적이 예수님이 식민지배하고 있었던 로마를 멸망시키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셔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저마다 예수님의 주위에서 예수님의 권력을 나누어 받게 될 것이라고 상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아예 드러내놓고 예수님에게 청을 했던 제자들이 있었죠. 바로 제배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너희가 아주 잘못 생각하고 있다. 나는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야. 나는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세상에 왔어. 사람들을 섬기고 몸값을 바치기 위해서 세상에 왔어. 알아?" 라고 말씀하셨죠? 그죠?
그리고는 이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어요. "너희도 날 따라오려거든 나처럼 사람들을 섬기고 몸값을 바쳐 희생을 각오해야 할거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예수님의 정체성 그리고 나아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을 아주 확실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바로 섬기는 것이라고. 사람들을 섬기고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라고.
구약 성서에서도 예언되었죠. 인간을 구원할 메시아는 인간들을 위해 희생할 속죄 제물이 되실 분이라고. 분명히 우리는 제1독서 말씀에서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그분은 죄는 짓지 않으신, 그러나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과 시련을 받으신 분이십니다. 예를 들면 지금 현재 우리는 코로나 때문에 서로 많이 힘이 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또 코로나 때문에 생활이 궁핍해져 버린 사람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고독과 우울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어요.
때로는 우리는 예수님에게 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없애 달라고 청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하느님이시니까.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 아니시죠. 그분은 오늘 복음 말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도 코로나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과 함께 계시고, 또 지구를 오염 으로 더럽힌 인간들을 대신해서 몸값을 치르기 위해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재촉하여 우리가 스스로 코로나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 이들에게 발벗고 가서 그들을 섬길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 넣어 주시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만.
오늘 복음 말씀의 핵심 메시지였습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0月18日 月曜日 聖ルカ福音記者の祝日

わがキリスト信者たちを他の言葉に変えて言えば、福音宣教師たちです。 つまり、使徒たちの後継者なのです。
だから、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は、他でもなく私たちが心に留めて聞くべきみことばなのです。
イエス様が福音宣教師の私たちに何とおっしゃいましたか。
一番目、福音宣教師がたくさん出るように祈りなさいとおっしゃいました。
二番目、イエス様は私たちを心配してくださいました。 世の中はまるで狼の群れのようだと。 だからこの世の中に送りながら、 いくつかのアドバイスをやってくれました。
どんなアドバイスかというと、一番目、お金の心配、服の心配、家の心配など、世の中の人のように生活の心配をするな、とおっしゃいました。
二番目に、私たちがいつもすべき挨拶は「この家に平和があるように」という挨拶です。 世の中の人々のようにする挨拶ではなく、神の子が直接私たちに挨拶する方法を教えてくださいました。 一緒にやってみましょうか? 「この家に平和があるように」「あなたに平和があるように」。
三番目、そして誰かが福音宣教師に留まる場所や食べ物を提供するなら、断らずに喜んで受け取れとおっしゃいました。 それが福音宣教師たちの給料だとおっしゃいました。
最後に福音宣教師たちがすべきことは、ほかでもなく体であれ心であれ、病気の人々を訪ね、彼らに神様が遠くいらっしゃるのではなく、あなたと一緒にいるという慰めのメッセージを伝え、その証拠として彼らのそばに一緒にいてほしいということです。
つまり、私たちがイエス様から受けた使命は、悔い改めの宣言、悪魔の追放、病者の世話です。
悔い改めの宣言は世の中を変化させるのではなく、まさに自分自身を変化させることであり、
悪魔の追放は施しをたくさんして悪魔が近づかないように防ぐことで、
病者の世話は病者を訪ねて彼らの話を聞いてあげることです。
さて、これでイエス様のお言葉をお聞きしましたので、このミサが終わって家に帰ったら、いつも福音宣教師という心構えでイエス様が教えてくださった通りに生きていくよう頑張ってみましょう。 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을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복음 선교사들입니다. 즉, 사도들의 후계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복음 말씀은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우리가 새겨 들어야 할 말씀인 것이죠.
예수님께서 복음 선교사인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첫째, 복음 선교사들이 많이 나오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어요.
둘째, 예수님께서 우리를 걱정해 주셨습니다. 세상은 마치 이리떼 같다고. 그러니까 이리떼 같은 세상에 보내시면서 이런저런 몇 가지 조언을 하셨습니다.
어떤 조언이냐 하면, 첫째, 돈 걱정, 옷 걱정, 집 걱정 등 세상 사람들처럼 생활의 걱정을 하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둘째, 우리가 언제나 해야 할 인사는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라는 인사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하는 인사가 아니라 주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인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따라해 볼까요?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당신에게 평화를 빕니다"
셋째, 그리고 누군가가 복음 선교사에게 머물 곳이나 먹을 것을 제공한다면 거절하지 말고 기꺼이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그게 바로 복음 선교사들의 봉급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복음 선교사들이 해야 할 일은 다름아닌 몸이든 마음이든 아픈 사람들을 찾아 가 그들에게 하느님이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있다는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며 그 증거로 그들 곁에 함께 있어 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님에게 받은 사명은 회개의 선포, 악마의 추방, 병자 돌봄입니다.
회개의 선포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악마의 추방은 자선을 많이 하여 악마가 더 이상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며,
병자 돌봄은 아픈 사람들을 찾아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입니다.
자, 이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으니 이 미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시면 늘 복음 선교사라는 마음가짐으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살아가도록 노력해 봅시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0月21日 木曜日 年間第29木曜日 お説教

イエス様は確かに私たちに分裂をもたらしてくださいました。 私たちを血で結ばれた家族から引き離して、イエス·キリストの中に新たに結ばれた家族共同体を作ってくださったのです。 それが教会です。 教会はイエス·キリストの中で新たに結ばれた家族共同体です。
もともとあった血で結ばれた家族の中にキリスト信者が一人になったとしましょう。 その人はとても強い迫害を受けることになるでしょう。 そして信者になる前よりもっと厳しい倫理的な基準を設けるようになるでしょう。 それ以来信者になった家族のメンバーと元の家族は別れることになるのです。
そもそも血で結ばれた家族関係はアダムの原罪から始まりました。 でも、キリストの中で新しく結ばれた家族は、新しいアダムであるキリストの血によってきれいになれ、新しく作られた家族関係です。 新しいぶどう酒は、新しい袋に入れるように、私たちが神の国に入るためには新しく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そのため、新しく結ばれた家族共同体である教会の信者たちは、私たちを神の国の縁で結ばれるようにしてくださった神様に感謝し、新しく結ばれた家族のメンバー同士でお互い仲良く過ごさ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神の国のルールはお互いに愛し合いながら仲良く過ごすことだからです。
さて、お互い仲良くするためにはどうすればいいですか? それは、私たちが神の教えである聖書のみことばに熱意を持って、神のみことばに専念すべきだと思います。 聖書のみことばを読んで黙想し、祈りを捧げる時間を一日の全てにしてみましょう。
これについて、今日の答唱詩編で、詩編の著者はこう歌っていませんでしたか?
「しあわせな人、神をおそれ、主の道を歩む者。
しあわせなひと、罪びとの道を歩むことなく、神のおきてを喜びとし、昼も夜も教えを心に留める人」。
昼も夜も毎日、神の教えである聖書に専念してみましょう。
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예수님께서는 확실하게 우리에게 분열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우리를 피로 맺어진 가족에게서 떼어 내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새롭게 맺어진 가족 공동체를 만들어 주셨으니까요.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맺어진 가족 공동체입니다.
원래 있었던 피로 맺어진 가족 중에 그리스도 신자가 한명 되었다고 칩시다. 그 사람은 엄청난 박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신자가 되기 전보다 훨씬 엄격한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되게 될 것입니다. 그 이후로 신자가 된 가족 구성원과 원래 가족은 갈라지게 될 것입니다.
원래 피로 맺어진 가족 관계는 아담의 원죄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새롭게 맺어진 가족은 새로운 아담인 그리스도의 피로써 깨끗하게 정화되어 새롭게 만들어진 가족 관계입니다. 새 술은 깨끗한 새 병에 담아야 하듯이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롭게 맺어진 가족 공동체인 교회 신자들은 우리를 하느님 나라의 인연으로 맺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새롭게 맺어진 가족 구성원끼리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규칙은 서로 사랑하며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기 때문이니까요.
자, 그럼 서로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가르침인 성서 말씀에 열정을 가지고 하느님 말씀에 전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하루의 전부로 삼도록 해봅시다.
이에 대해 오늘 화답송에서 시편 저자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지 않습니까?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밤낮으로 주님의 가르침에 빠져 들어봅시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0月22日 金曜日 年間第29金曜日 お説教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を単刀直入に言えば、当時の季節の変化、天気の変化を知る人々がなぜ神の子イエス·キリストのみことばを理解できないのか、それがおかしいということです。
でも、現代人は自然現象、気象変化を見ながらも、地球が死につつあることを知らない人がたくさんいます。 皆さんもそうですか? 地震、火山の噴火、コロナウイルスの深刻な活動を見ながらも、そんなことがなぜ起きるのかわからない人がかなり多いようです。 さらにマスコミの話だけを信じてコロナ感染者が減っていると勘違いしている人たちが思ったよりこの日本でたくさんいます。 検査をしないから、感染者が出ないのです。 韓国のソウルの場合、最近、PCR検査の数は1日に6万件です。 反面、日本の東京の場合、最近、PCR検査の数は1日に3000件です。 日本は検査をたくさん減らしました。 どうして? 選挙のためです。 選挙で自民党が勝つために、まるで自分たちがコロナウイルスに勝ったのを知らせて、もう一度政権を握るためにこういうことをでっち上げているのです。 ここに日本国民はほとんど騙されているのです。
イエス様は公生活を始めた時、人々の前で何とおっしゃいましたか。 「悔い改めなさい。 神の国が近づいてきた」とおっしゃいましたね?
神の国は誰ですか? イエス·キリストです。そうでしょう? その神の国で一番最初におっしゃったみことばがまさに悔い改めなさいということです。 人々が今まで生きてきた伝統、習慣、文化などを捨てて、神の国の生き方の態度で変えなさいということです。
ところが、人々は態度を変えましたか。 変えてませんよね? 全く変えてませんでした。 態度を変えたのは12人の弟子たちだけでした。 イエス様がたくさんの奇跡を見せてくださってまで説得しようと努力なさったにもかかわらず、人々は頑なにも人生の態度を変える努力を全然しませんでした。
これについてイエス様は最終的に警告しました。 人生の最後まで来ても悔い改めず、まだ和解のできない人たちと赦すどころか、和解さえもしないのなら、私審判の時、煉獄に引き込まれて、最後まで自ら悔い改めるまで、煉獄から永遠に釈放されないだろうとおっしゃいました。
これはどれほど恐ろしいみことばですか。 こうまでなってはいけないんじゃないですか。 ですから、今、生きている間にもし和解できなかった人がいたら、訪ねていって和解して、また今までこの日本文化の中で生きてきて体に慣れてしまった悪い習慣と態度などをきれいに脱ぎ捨てなければならないじゃないですか?
私は皆さんが悔い改めて神様とそして神様とそっくりな人々とお互いに仲良く過ごしお互いに愛して自分の罪を赦してくださった神様に感謝していつも喜ぶ生活をしてほしいです。
以上です。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오늘 복음 말씀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당시 계절의 변화, 날씨의 변화를 아는 사람들이 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이해하지 못하는 지 그게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자연 현상, 기상 변화를 보면서도 지구가 빠르게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그러신가요? 지진, 화산 분화, 코로나 바이러스의 심각한 활동을 보면서도 그런 것이 왜 일어나는 지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심지어 매스컴의 말만 믿고 코로나 확진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이 일본 내에 많이 있습니다. 검사를 안하는데 확진자가 나올리가 있습니까? 한국 서울의 경우, 요즘 PCR검사 수는 하루 6만 건입니다. 반면에 일본 도쿄의 경우, 요즘 PCR 검사 수는 하루 3000건입니다. 일본은 검사를 대폭 줄였어요. 무엇 때문에? 선거 때문에요. 선거에서 자민당이 이기기 위해서 마치 자기네들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겼다는 것을 알려 다시 한번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이런 것을 조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일본 국민들은 대부분 속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처음 시작하셨을 때 사람들 앞에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회개하여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말씀하셨죠? 
하느님 나라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죠? 그 하느님 나라께서 가장 맨처음에 하신 말씀이 바로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 오던 전통, 습관, 문화 등을 버리고 하느님 나라의 삶의 방식으로 태도를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태도를 바꾸었습니까? 안바꿨죠? 전혀 안바꿨습니다. 태도를 바꾼 사람들은 열두명의 제자들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수많은 기적을 보여주시면서까지 설득하려고 노력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고집스럽게도 삶의 태도를 바꾸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최종적으로 경고하셨습니다. 삶의 마지막까지 와서도 회개하지 않고, 또 아직도 화해하지 못한 사람들과 용서는 커녕 화해조차 하지 못한다면, 사심판 자리에서 연옥으로 끌려 들어 가 마지막 스스로 회개할 때 까지 연옥에서 영원히 석방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이렇게까지 되면 안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지금 살아 있는 동안에 혹시 화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찾아가서 화해하고, 또 지금까지 이 일본 문화 속에서 살아오면서 몸에 익숙해져 버린 나쁜 습관과 태도 등을  과감히 벗어버리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회개하여 하느님과 그리고 하느님과 똑닮은 사람들과 서로 사이좋게 지내며 서로 사랑하며 내 죄를 용서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는 생활을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0月24日 日曜日 年間第30主日 お説教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でイエス様は盲人このバルティマィを見られるようにやってくださいました。 
バルティマィはイエス様がいらっしゃるという群衆の声を聞いて大声で助けを求めました。 
周りの人がうるさいと静かにしろと言っても、彼はかえってもっと大声で叫んで助けを求めました。
私たちは霊的に敏感でなければなりません。 バルティマィは盲人でしたけど、彼は霊的に敏感でした。 イエス様の姿を目で見られなかったにもかかわらず、彼はイエス様を探しました。 そして力を尽くしてイエス様に叫びました。 人々がうるさいと邪魔をしても、彼はそんな邪魔なんかは無視しました。 このように、イエス様を探し出すことに、私たちは積極的に取り組ま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して、イエス様への道を誰かが邪魔をしても、その邪魔を無視できなければなりません。
彼の叫びに答えたイエス様が彼を呼びました。 これに人々もバルティマィに励ましの言葉をかけました。 バルティマィは周りの小さな声も逃がしませんでした。 イエス様に行くことさえできれば、たとえ小さな声だとしても、私たちにとって非常に大きな助けになるのです。
ついにイエス様がバルティマィに声をかけると、バルティマィは自分の願いをとても簡単に核心だけ伝えました。バルティマィイエス様が自分を治してくれるという信仰が基本的にありました。 まるで私たちが病気で病院に行けば、医者の言葉を疑わず信頼するように、彼もイエス様を疑わず信頼しました。 バルティマィは信仰があったから、ただ核心だけ求めたのです。
するとイエス様は何とおっしゃいましたか。 
「あなたの信仰があなたを救った」とおっしゃいました。イエス様はバルティマィの視力だけでなく、彼の信仰を確認し、彼を罪と死から救ってくださいました。 信仰が私たちを救ってくれます。 救い主イエス様に対する徹底的な信仰が私たちに永遠の命をもたらしてくれます。
そうしてイエス様に救われたバルティマィはイエス様に従いました。 イエス様に救われた人々がイエス様に従うのです。 私たちも水と聖霊でイエス様に救われた人々です。 では、もう私たちがすべきことは何でしょうか。
皆さんも知ってるように、イエス様の教えを実践することです。 それでは、イエス様の教えを実践するためには、まず何を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か。 イエス様の教えが載った福音書をしばしば読ま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 そうじゃないですか? 自分に任された世の中の仕事より、自分を、そして私たちを罪と死から救ってくださったイエス様の教えを学び、実践することが優先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つまり、主のみことばを学び、実践することが私たちが優先的にすべき仕事だと私は思います。 以上です。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눈먼 이 바르티메오를 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바르티메오는 예수님이 오신다는 군중들의 소리를 듣고 큰소리로 청을 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조용하라고 말해도 그는 오히려 더 큰 소리로 외치며 청을 합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민감해야 합니다. 바르티매오는 비록 맹인이었지만 그는 영적으로 민감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님을 찾습니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서 예수님에게 부르짖습니다.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방해를 해도 그는 그런 방해따위는 무시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찾아 나서는 일에 우리는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로 가는 길에 누가 방해를 해도 그 방해를 무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의 외침에 응답하신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이에 사람들도 바르티매오에게 격려의 말을 합니다. 바르티매오는 주변의 작은 소리도 놓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에게로 갈 수만 있다면 비록 보잘것없는 작은 목소리라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있어서 아주 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바르티매오에게 말을 거시자, 바르티매오는 자기의 청을 아주 간단하게 핵심만 전하였습니다.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이 자기를 낫게 해줄 수 있다는 믿음이 기본적으로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의사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신뢰하는 것처럼 그도 예수님을 의심하지 않고 신뢰하였습니다. 
바르티매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주절주절 청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르티매오의 시력 뿐만 아니라 그의 믿음을 확인하시고 그를 죄와 죽음에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신앙이 우리를 구원해 줍니다. 구세주 예수님에 대한 철저한 신앙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 줍니다. 
그리고나서 예수님에게 구원받은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에게 구원받은 자들이 예수님을 따라가기 마련입니다. 즉, 우리도 물과 성령으로 예수님의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도 다 알다시피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하려면 먼저 무엇을 해야 하죠? 그분의 가르침이 실린 복음서를 자주 자주 읽어야 하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자기에게 맡겨진 세상의 일보다 나를 그리고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주신 그분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하겠습니다. 즉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일이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0月25日 月曜日 年間第30月曜日 お説教

イエス様は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で、安息日の意味についてよりはっきり教えてくださいました。
当時ユダヤ人たちは安息日に無条件何もしないで休ま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ったようです。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だけ見てもよく分かります。 イエス様が18年間病の霊に取りつかれている女を治してくれた時、彼らは安息日にはいけないと、安息日ではなく別の日に治癒してくれと言い張ります。
イエス様が教えてくださった安息日のまことの意味は「解放の日」です。 実は、安息日はイスラエルの民が過去エジプトの奴隷生活に苦しめられていた時、一日も休めずつらい労働にだけ苦しんだ時を記憶し、一週間のうち一日だけでも神様の創造の業を思い出し、自分と家族、そして隣人、さらにはすべての被造物に安息と解放を与えるようにモーセを通して神様に命令されたことが、まさに安息日なのです。
どころが、イエス様の時代にユダヤ人たちは無条件何もするなとだけ理解していたのですから、イエス様が見ても、本当にもどかしく思えたのではないですか?
18年間病の霊に取りつかれている女をいつ治してくれるのがちょうどいいと思いますか。 イエス様が安息日に彼女に会ったから、すぐに病の霊から解放してくれるのが当たり前ではないでしょうか。 一日でも病の苦しみから解放してくれ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を通して私たちが知るべきことは、イエス様が教えてくださった福音のみことばを実践することは、まさに今だということです。 明日でもないし、明後日でもないです。 スケジュール表に入れて「その日は必ず施し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決心する、そのようなことではありません。 福音のみことばは明日でも明後日でもなく、まさに今、自分が足を踏んで立っているその現場で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です。 イエス様のように。
私たちもイエス様のようにある人が苦しんでいるということに気づく霊的な目を持た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してそのような霊的な目で今ある人が言えない事情で苦しんでいるということを気づいたら、すぐにその人に近付いて「大丈夫ですか? どうかしましたか。どこか不便なところがありますか?」と聞いてあげなければなりません。
「今日は忙しいから今度聞いてみよう」と延ばさないでほしいです。
以上です。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 말씀에서 안식일의 의미에 대해 보다 확실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무조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죠. 예수님이 18년 동안 병마에 시달린 여자를 낫게 해주시자, 그들은 안식일에는 안된다고, 안식일 말고 다른 날에 치유해주라고 우깁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안식일의 참된 의미는 다름 아닌 해방의 날입니다. 사실 안식일은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에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 시달리고 있을 때 하루도 쉬는 날 없이 고된 노동에만 시달렸던 때를 기억하며 일주일 중에 단 하루만이라도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떠올리며 자신과 가족, 그리고 이웃, 더 나아가 모든 피조물에게 안식과 해방을 주라고 모세를 통해 하느님에게 명령받은 것이 다름 아닌 안식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들은 무조건 아무 일도 하지 마라라고만 이해를 하였으니 예수님이 보시기에 참 답답해 보이지 않았겠습니까?
18년 동안 병마에 시달린 여자를 언제 낫게 해주는 게 가장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이 안식일에 그녀를 만났으니 그 즉시 병마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루라도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복음 말씀을 실천하는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내일도 아니고, 모레도 아닙니다. 일정표에 넣어서 그 날은 꼭 자선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그런것이 아닙니다. 복음 말씀은 내일도 모레도 아닌 바로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그 현장에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예수님처럼 어떤 사람이 힘들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영적인 눈을 지녀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영적인 눈으로 지금 어떤 사람이 말못할 일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면 그 즉시 그 사람에게 다가 가 '괜찮아요? 무슨 일 있으세요? 어디 불편한 곳이 있으세요?' 라고 물어봐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바쁜데 다음에 물어보지 라고 미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0月29日金曜日 年間第30金曜日 お説教

単刀直入に話します。
イエス様は安息日にファリサイ派のある議員の家で、水腫を患っている人を治してくださいました。
当時のユダヤ人の常識では、イエス様のこの行動はとんでもないことでした。
ユダヤ人の律法には安息日に仕事をしてはいけないという意味で病気も治さず、子どもや牛が井戸に落ちても救ってくれないようにする法律があったそうです。 この法を誰でも破ったら、その場で死刑でした。
ところで、イエス様は、これ見よがしに病者一人を安息日に、さらにはファリサイ派のある議員の家で治してくれました。
ファリサイ派の人たちは、黙っていました。 これはイエス様のみことばに賛成するという意味ではありません。 このような時の沈黙は警告の意味です。でも、それにかまわずイエス様はおっしゃいました。 「いくら安息日だとしても、息子や牛が井戸に落ちたら、今すぐ助けてくれないか」とおっしゃいました。
これに対し、ファリサイ派の人たちも同意したのか、何も答えられなかったそうです。 彼らにも良心というものが多分あったようです。
私たちも常に気をつ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 私たちも社会的なルールや通念、文化、法などを掲げて今苦しんでいる人々の状況に知らんふりをしないように注意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無関心が大きな罪なのです。 そして、マスコミのフェイクニュースにだまされず、時間が経てば経つほどひどくなるこの感染病の状況の中で貧しい人々により関心を持つイエス·キリストの良い弟子たちになるように、常に福音の精神で目覚めなければなりません。 アーメン、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바리사이의 지도자의 집에서, 수종을 앓고 있는 사람을 낫게 해주셨습니다.
당시의 유다인들의 상식으로 봤을 때 예수님의 이 행동은 말도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의 율법에는 안식일에 일을 하지 마라는 뜻에서 병도 고쳐 주지 말고, 자녀나 소가 우물에 빠져도 구해 주지 말도록 하는 법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법을 누구라도 어기면 그 자리에서 사형이었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보란 듯이 병자 한 명을 안식일에 , 심지어 바리사이의 지도자의 집에서 낫게 해주셨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잠자코 있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에 찬성한다는 뜻이 아니죠. 이럴 때 침묵은 경고의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것에 개의치 않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너희 중에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진다면 당장 구해 주지 않겠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바리사이들도 동의를 했는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들도 양심이라는 것이 아마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우리도 늘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도 사회적인 규칙이나 통념, 문화, 법 등을 내세워 지금 고통받고 있는 이들의 상황을 모른체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무관심이 가장 큰 죄인 것입니다. 그리고 가짜 뉴스에 속지 말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심해져 가는 이 전염병의 상황 안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착한 제자들이 되도록 언제나 복음의 정신으로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멘.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0月31日 日曜日 年間第31主日 お説教

今日の第一朗読のみことばと福音のみことばは、ユダヤ人が命より大切にする「シェマーイスラエル」です。 
「シェマー」は「聞け」という意味です。 申命記6章4節のこのみことばをユダヤ人は玄関の前にもつけ、家族みんなが集まった食卓にもつけ、さらにはトイレにもつけ、ユダヤ人の家族ならこの聖書のみことばを覚えられるように今もそうしています。
そして、親が子供たちに教える教育の中で一番優先される教育が、すなわちこの「シェマーイスラエル」教育です。神様がイスラエルの民に何をおっしゃったのかについて教え、それを心の中に留めておいて実践するように教えています。 イスラエルの国民は、神のみことばである律法を最高の教育として教え、また今もそのように教えています。
彼らがそうしている理由は、昔、自分の先祖をエジプトから脱出させた神様の命令による一番大きな掟だからです。

でも、わがキリスト信者にとっては、永遠に完全な者とされておられる神の子、大司祭がいらっしゃいます。 その方がまさにイエス·キリストです。 その方が最後の遺言で教えてくださった掟は何でしょうか。 まさにヨハネによる福音書15章17節のみことばですね。 それが何ですか。「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これがわたしの命令である」。ね?
私がイエス·キリストが命令した掟を言ったた理由は、旧約の「シェマーイスラエル」と新約の救い主が命令した掟がみんな同じように大切だからです。
したがって、わがキリスト信者たちも、ユダヤ人のように、イエスキリストの最後の遺言を常に覚えながら、生きていかなければなりません。 最後の遺言だけでなく、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に出てきた「シェマーイスラエル」の掟も一緒に覚えるようにやってみましょう。
あまり長くもない文章なので覚えやすいでしょう。 頭の中だけで覚えるだけでなく, 毎日口でも叫び, イエスキリストが教えてくださった掟を忘れないように、体に慣れるように絶えず祈って、黙想して、 どうすれば兄弟姉妹を愛することができるか悩み, 時々反省して、実践するように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して子供や孫たちにも教えてください。
一緒にやってみましょうか? 
「第一の掟はこれである。イスラエルよ、聞け。わたしたちの神である主は、唯一の主である。心を尽くし、精神を尽くし、思いを尽くし、力を尽くして、あなたの神である主を愛しなさい」。
「第二の掟は、これである。 隣人を自分のように愛しなさい。この二つにまさる掟はほかにない」。 
そして、「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これがわたしの命令である」。
肝に銘じてください。最後の裁きのテストの条件は、他でもなく愛です。 私たちの中に最も小さな人の一人に対してよくしてくれたか、してくれなかったか、するのが後日私たちが永遠の命の国に入る資格の条件になるのです。 家に帰ったら必ずマタイによる福音書25章31節から46節までを読んで黙想してみてください。 
以上です。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오늘 제1독서 말씀과 복음 말씀은 유다인들이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쉐마 이스라엘' 입니다. 
'쉐마'는 '들어라'는 뜻이죠. 신명기 6장 4절의 이 말씀을 유다인들은 현관 앞에도 붙이고, 가족 모두가 모인 식탁에도 붙이고, 심지어 화장실에도 붙여 유다인 가족이라면 이 성서 말씀을 외울 수 있도록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교육 중에 가장 우선시되는 교육이 다름 아닌 이 '쉐마 이스라엘' 교육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는지에 대해서 가르치고 그것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실천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하느님의 말씀인 율법을 가장 으뜸가는 교육으로 가르쳤고 또 지금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이유는, 옛날 자기 선조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신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가장 으뜸가는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에게는 영원히 완전하게 되신 대사제께서 계십니다. 바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께서 마지막 유언으로 남겨 주신 계명이 무엇입니까? 요한 복음 15장 17절의 말씀이죠?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제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계명을 말한 이유는 구약의 '쉐마 이스라엘'과 신약의 구세주께서 명령하신 계명이 모두 똑같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도 유다인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언을 늘 외우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마지막 유언 뿐만 아니라 오늘 복음 말씀에 나온 '쉐마 이스라엘' 계명도 함께 외우도록 해 봅시다. 
별로 길지도 않은 문장이라서 외우기 쉽죠? 머리속으로만 외울 뿐만 아니라, 매일 입으로도 외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계명을 잊어 버리지 않고 몸에 익숙해 지도록 끊임없이 기도하고 묵상하며 어떻게 하면 형제 자매를 서로 사랑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때때로는 반성도 하며 실천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자녀와 손주들에게도 가르쳐 주십시오. 
따라해 볼까요?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명심하십시오. 최후의 심판의 시험 조건은 다름아닌 사랑입니다. 우리 중에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잘 대해 주었는지 아니었는지가 훗날 우리가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가시면 반드시 마태오 복음 25장 31절부터 46절까지를 읽고 묵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1月1日 月曜日 諸聖人 お説教

皆さん、神の国はどのような国ですか? そこには誰がいますか? 今日の第一朗読のみことばで聞きましたよね? 真ん中に神様がいらっしゃて、天使と神の国の長老たちがいるそうです。 そして、誰にも数えきれないほど、ものすごい人たちがいるそうです。
それでは、その神の国にいる人々は一体どんな人々ですか?
心の貧しい人々、つまり、神様しか頼る所がなかったとても弱い人々。
悲しむ人々、つまり、世の中で、ある不幸や苦しみがあって涙ばかりで世の中を生きてきた人々。
柔和な人々、つまり、心がとても優しいので、誰かを助けなければ耐えられなかった人々。
義に飢え渇く人々、つまり、正しくないことを見つかると、陰口を叩かずに相手を愛する心でアドバイスした人々。
心の清い人々、つまり、幼子のように心が純粋な人々。
平和を実現するために努力した人々、つまり、嫉妬や争いの現場で傷つけられても和解を成し遂げるために頑張った人々。
義のために迫害される人々、つまり、義を実践し、周りの人々にあらゆる非難と暴言、いじめなどで苦しんだ人々。
そして、第一朗読のみことばでも聞きましたが、世の中にいたときに、いろいろと大きな苦しみを経験した多くの人々、つまり、その苦しみのために、一分一秒も全く幸せだったことのない人々が、まさに神の国の市民なのです。
ですから皆さん、苦しみが必ず悪いわけではありません。 だから、世の中が苦しみだとしても文句を言わないでください。 この世の苦しみはどうせ過ぎ去ることに過ぎません。 彼らには永遠に消えない神の国があるからです。
そして自分に与えられる十字架を拒否しないでください。 その十字架があるからこそ、その人は救われるのです。 きっぱり言うと、十字架がないと絶対に救われません。
もし十字架なしに死んでしまったと考えてみてください。 この世でひたすら嬉しく幸せに暮らして、小さな苦しみや試練もなく死んだと思ってみてください。 その人が耐えなければならない償いがどれだけ多いのか想像でもやってみましたか。 言い換えれば、その大きな償いを煉獄で全部きれいになくさないと、絶対に神の国に入ることはできません。
だから、この世にいる時に自分が持って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十字架があることを願ってください。 そして、その十字架を黙々と耐え、背負って行ってください。 十字架を黙々と背負って死ぬと、その人は、その十字架のおかげで神の国の市民になるでしょう。煉獄で経験しなければならない償いがそれほど減るのですから。 十字架が重ければ重いほど、それほど、煉獄にいる時間が減っているのです。
そして、今日から八日間お墓を訪れて、教皇様の祈りの意向通りに主の祈りとアブェーマリアの祈り、使徒信条を捧げて、赦しの秘跡とご聖体拝領をすれば全免償が与えられ、その全免償は、煉獄にいる死者たちに譲渡されます。 一人の死者を救うのが、すなわち、自分の魂を救うのだということを、皆さんはすでにご存知だと思います。
そして八日間だけでなく、死者の月の今月中、煉獄の魂のために、ミサがあるたびにたくさんの祈りをやってください。
以上です。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여러분, 하늘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그곳에는 누가 있습니까? 오늘 제1독서 말씀에서 들었죠? 중앙에 하느님께서 계시고 천사와 하늘나라의 원로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하늘나라에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입니까?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즉 하느님 밖에 의지할 곳이 없었던 아주 약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즉 세상에서 어떤 불행이나 고통이 있어서 늘 눈물로 세상을 살았던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즉 마음이 아주 아주 비단결같이 고와서 누군가를 도와주지 않고서는 못배겼던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즉 옳지 못한 것을 발견하면 뒤에서 험담하지 않고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조언해 주었던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즉, 어린 아기처럼 마음이 순수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 즉 질투나 다툼의 현장에서 상처를 받아가며 화해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았던 사람들, 즉 의로움을 실천하다가 주위 사람들에게 온갖 비난과 험담, 학대 등으로 시달렸던 사람들.
그리고 제1독서 말씀에서도 들었지만, 세상에 있었을 때 여러가지 큰 괴로움을 겪었던 수많은 사람들, 그러니까 그 괴로움 때문에 일분 일초도 전혀 행복했던 적이 없었던 사람들이 바로 하늘나라의 시민들이란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고통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고통스럽다고 하더라도 불평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의 고통은 어차피 지나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들에게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하느님 나라가 있기 때문이니까요.
그리고 자기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거부하지 마십시오. 그 십자가가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은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단호하게 말하면, 십자가가 없으면 절대로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만일 십자가 없이 죽어버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서 마냥 기쁘고 행복하게 살다가 조그만 고통이나 시련도 없이 죽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이 감당해야 할 보속이 얼마나 많은지 상상이나 해 보셨습니까? 다시 말하자면, 그 엄청나게 많은 보속을 연옥에서 다 깨끗이 없애지 않고서는 절대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있을 때 자신이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있기를 바라십시오. 그리고 그 십자가를 묵묵히 견디며 지고 가십시오. 십자가를 묵묵히 지다가 죽으면 그 사람은 그 십자가 덕분에 하늘나라의 시민이 될 것입니다. 연옥에서 겪어야 할 보속이 그만큼 줄어들테니까요. 십자가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그만큼 연옥에 있을 시간이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팔일동안 묘지를 방문해서 교황님의 기도 지향대로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사도신경을 바치고 고해성사 와 영성체를 하면 전대사가 주어지며, 그 전대사는 연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양도될 수 있습니다. 연옥 영혼 한 명을 구원하는 일이 다름아닌 나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8일 뿐만 아니라 위령 성월인 이번 달 내내 연옥 영혼들을 위해 미사를 많이 봉헌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1月2日 火曜日 死者の日 小野幌教会 ミサ

私が葬儀ミサの時、いつもの説教のテーマがあります。 聞いた方々は分かると思いますが、私審判と最後の審判です。 
たくさんの人々はよく知りません。 信者ですら、なぜ人間がこの世に生まれたのか分かりません。それで私は葬儀のミサのたびにそのようなテーマで説教します。
皆さんはご存知ですよね? なぜ人間がこの世に生まれたのですか? 「人が神を知り、その方に仕え、自分の魂を救うためにこの世に生まれました」。 合ってますか? 
そのため、神に仕え、魂を救うことは、世の中のどんな仕事よりも最も重要であり、最も優先的にしなければならないことなのです。
そして先日月曜日のホームページの動画で諸聖人の説教でも話しましたが、救いに最も必要な条件として十字架を例に挙げて話しましたね?  十字架なしでは救われないということです。 もしこの十字架を不真面目にして死んだら、私たちは煉獄でたくさんの償い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 その償いを全部完了しなければ、絶対に神の国に入ることはできないだろうということも月曜日の説教で言いました。 気になる方は、ホームページに入って確認してみてください。
今月の死者の月はその償いを行わなければならない数多くの死者たちのために祈る月です。 彼らが経験している償いを完了させ、できるだけ早く煉獄から脱出して救われるよう、この地上の教会の信者たちの祈りが絶対的に必要です。
だから皆さん、煉獄にいる死者たちのために一生懸命ミサに与って、またしばしば彼らのために一生懸命祈りましょう。
カトリック教会のカテキズムはこのように教えます。 
「それは死者が清められて、神の至福直観に至ることができるためです。教会はまた、死者のために施し、免償、償いのわざを勧めています」と。 カトリック教会のカテキズムの番号1032に出ています。
また聖アンブロシオもこうおっしゃいました。 
「涙を抑え、祈りに努めてください。 泣くことは間違っていないが、この世を去った魂のために祈ってあげることがもっと必要だ」と。
だから皆さん、この世を去った皆さんの愛する家族が今天国にいると想像しないで、もしかしたら彼らが今も煉獄で苦痛を耐えながら償いを行っているかも知れないので、彼らのために絶えず施しと祈り、償いと免償を続けてください。 
特にこの死者の月にですね。 
バチカンでは、今月末まで死者の月の全免償を延長することになったそうです。全免償を受ける条件は、お墓を訪ねて、そのお墓で教皇様の祈りの意向通りに死者のための祈りと主の祈りとアブェーマリアの祈りと使徒信条を祈り、赦しの秘跡とご聖体拝領をすれば、その条件を全部行ったら死者の月の全免償を受けられます。
その全免償は煉獄にいる死者たちの魂に讓渡されます
以上です。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제가 장례미사 때 늘 하는 강론 주제가 있습니다. 들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사심판과 공심판입니다.
사람들이 잘 몰라요. 심지어 신자들도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우리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잘 몰라서 장례미사 때마다 그런 주제로 강론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아시죠? 사람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까? 사람이 하느님을 알고 그분을 섬기고 자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죠? 맞아요?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을 섬기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도 가장 중요한 일이며,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어제 모든 성인 대축일 강론에서도 말했지만, 구원에 가장 필수적인 조건으로 십자가를 예로 들었죠? 십자가 없이는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 십자가를 소홀히 하고 죽는다면 우리는 연옥에서 엄청난 보속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 보속을 다 완료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는 것도 어제 강론에서 말했어요. 궁금하신 분들은 홈페이지에 들어가셔서 확인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번달 위령 성월은 바로 그 보속을 해야만 하는 수많은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달입니다. 그들이 겪고 있는 보속을 완료해서 그들이 가능한한 빨리 연옥에서 탈출하여 구원받을 수 있도록 이 지상에 있는 교회 신자들의 기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연옥영혼들을 위해 열심히 미사에 참례하고 또 수시로 그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합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연옥 영혼이 정화되어 지복직관에 이르도록 죽은 이들을 위한 자선과 대사와 보속을 권합니다'라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 1032항에 나와 있습니다.
또 성 암브로시오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눈물을 줄이고 기도에 힘쓰십시오. 운다는 것은 잘못은 아니지만, 세상을 떠난 영혼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 더 필요하다' 라고.
그러니까 여러분, 세상을 떠난 여러분의 사랑하는 가족들이 지금 천국에 있다고 안심하지 마시고 혹시 그들이 지금도 연옥에서 고통을 견디며 보속을 행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그들을 위해 끊임없이 자선과 기도와 보속과 대사를 하는 일을 꾸준히 수행하시길 바랍니다.
특히 이 위령성월에 말이죠. 이상입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カトリック小野幌教会 死者の日 ミサ

バチカンでは、今月末まで死者の月の全免償を延長することになったそうです。全免償を受ける条件は、お墓を訪ねて、そのお墓で教皇様の祈りの意向通りに死者のための祈りと主の祈りとアブェーマリアの祈りと使徒信条を祈り、赦しの秘跡とご聖体拝領をすれば、その条件を全部行ったら死者の月の全免償を受けられます。その全免償は煉獄にいる死者たちの魂に讓渡されます。

カトリック江別教会 死者の日 ミサ

2021年11月7日 日曜日 年間第32主日 お説教

皆さん、昔イスラエルの律法学者たちはどんな仕事をしていた人たちだったか知っていますか? 彼らは旧約聖書、つまり律法を解釈する仕事をしていた人たちでした。 
それで彼らは人々に人気と尊敬をたくさん受けたそうです。
蛇足を抜いて核心だけ言えば, イエス様が彼らを非難した一番重要な理由は, つまり、神様のみことばに従順して弱い者たちを助けなければならない責任がある人々がその義務と責任を破ったからです.
旧約聖書で貧しい人々といえばやもめ、孤児、異邦人でした。 彼らは保護を受けなければならない対象であるだけでなく、助けなければならない人々でした。 
保護しなければならず、助けなければならない人々を逆にいじめたから、彼らはイエス様に当然非難を受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
当時、やもめは、レプトン銅貨2枚で毎日暮らさざるを得ない都合でした。 レプトン銅貨2枚は、一握りの穀物粉を買うお金でした。 その一握りの穀物の粉でやもめは一食を食べなければならない都合になっていました。
そしてエルサレムの神殿に入るためには、数えない量の神殿税を払わ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のようにして得た神殿税で神殿を維持、建て直すために、あるいは司祭が供え物を買うために使われたそうです。
イエス様は、たくさんのお金持ちが大勢のお金を賽銭箱に入れることを見て、またやもめが一食の食事ほどしかない量のお金を入れる姿を見て何を考えたのでしょうか? 多分嘆い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金持ちたちは大勢のお金を入れても生きて行くことができました。でもやもめは全財産を入れたので、もう完全な貧乏人になりました。
皆さん、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から私たちは何を学ぶことができますか? 何を学びましたか? 
他のことはわかりませんが、これ一つだけは忘れないでほしいです。 
それは、神のみことばに従って伝える人々は、弱い者を助ける義務と責任のある人々だということです。
わがキリスト信者も、律法学者のように神のみことばを読んで勉強し、そのみことばを神のみことばを知らない人々に伝える人々なので、律法学者のようにやってはいけません。 私たちの周りの弱い者をいじめしないで、彼らの中に生きておられるイエス·キリストを見ることができ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そして、力のない弱い者に仕えなければなりません。少なくともわがキリスト信者たちは加害者の味方になってはいけません。 信者じゃない人々のように、弱い者だからといって無視したり、足で踏みにじってはいけません。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でイエス様も警告をされたでしょう? 弱い者たちをいじめると裁きの時に厳しい裁きを受けることになると。
一言だけ言います。 いったいこの日本の政府は何をやっているのですか。 貧しい自分の国の国民が納める税金をむしろもっと上げようとしているからです。自分の国の国民の健康も面倒を見ないくせに。
以上です。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여러분, 옛날 이스라엘의 율법학자들은 무슨 일을 했던 사람들이었는 지 아세요? 그들은 구약 성서, 즉 율법을 해석하는 일을 맡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에게 인기와 존경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군더더기를 빼고 핵심만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그들을 비난하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약자들을 도와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그 의무와 책임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구약성서에서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하면 과부, 고아, 이방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보호를 받아야 하는 대상일 뿐만 아니라 도와주어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보호해 주어야 하고 도와 주어야 하는 사람들을 역으로 괴롭혔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에게 마땅히 비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당시 과부들은요 렙톤 두 닢으로 매일 살 수 밖에 없는 처지였어요. 렙톤 두 닢은요, 한 줌의 곡식 가루를 살 수 있는 돈이었어요. 그 한 줌의 곡식 가루로 과부는 한 끼 식사를 해야만 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려면 어마어마한 양의 성전세를 내어야 합니다. 그렇게 거둔 성전세로 성전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데 혹은 사제들이 가죽을 얻게 되는 번제물을 구입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부자들이 큰 돈을 헌금함에 넣는 것을 보고 또 과부가 한 끼 식사 정도 밖에 안되는 양의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드셨을까요? 아마도 한탄하셨지 않았을 까요? 
부자들은 큰 돈을 넣어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부는 전 재산을 헌금했기 때문에 이제 완전한 가난뱅이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복음 말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무엇을 배우셨습니까? 
다른 건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잊어 버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고 전하는 사람들은 약자들을 도와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란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도 율법학자들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공부하며 그 말씀을 하느님의 말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율법학자들처럼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 주변의 약자들을 학대하지 말고 그들 안에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힘없는 약자들을 섬기어야 하겠습니다. 적어도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은 가해자의 편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다른 신자 아닌 사람들처럼 약자라고 해서 무시하거나 발로 짓밟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도 경고하셨지요? 약자들을 괴롭히면 심판 때 심한 벌을 받게 될 거라고.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도대체 이 일본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거죠? 가난한 자기 국민이 내는 세금을 오히려 더 올리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나라 국민의 건강도 돌보지 않는 주제에. 
이상입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1月8日 月曜日 年間第32月曜日 お説教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を説明すると、こうです。
誰かがあなたを傷つけたら怖がらずにその前ですぐに自分の感情を表現して傷つけた人の行動が間違っていることをはっきり教え、もし彼が自分の行動が間違っていると来て悔いるなら喜んで赦してあげなさいという意味です。
悔い改めないのに無条件赦してやれということではありません。相手が反省しなければ赦してはいけないでしょう。 でも、自分に傷つけた人が、本当に深く反省して悔い改めたら、その時には、始めて優しく赦してやれというみことばです。
だから、自分が他の人を傷つけたら反省して悔い改めなければならず、逆に自分を傷つけた人が心から反省して悔い改めなら、再び兄弟として受け入れて、暖かく抱きしめてあげなさい、というみことばです。
日本が過去に韓国を植民地として支配し、反倫理的な行為をしたことに対して心から反省するなら、多くの韓国人は優しく抱く意思があります。 でも、日本が反省せず最後まで自分の過ちはないと言い張るなら、韓国は日本を赦す意思はありません。
これは自分を傷つけた人が悔い改めてまた以前のようにお互い愛し合いながら生き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待ってくれるとても高い愛だと言えます。 愛は待ってくれるものだから。 イエス様はたとえ今自分を傷つけた人が悔い改めていないとしても彼をあきらめずに彼が悔い改めて戻って来るように待ってくれということです。 愛の始まりは待つことです。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の核心メッセージは、つまり、自分を傷つけた兄弟が悔い改めて戻ってくるように最後まで待ってくれ、やがて彼が悔い改めたら、すぐに彼を赦してくれ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だと思いますが。
ところで、自分の過ちを反省することと赦しを願うこと、そして赦してあげることが言葉のように簡単ではないですか。
これについてイエス様は今日の福音でおっしゃいました。 からし種一粒ほどの小さな反省の心、またはからし種一粒ほどの小さな赦しの心一つでもあれば、残りは聖霊である神様がご自分で和解に導いてくださるだろうと。
だから皆さん、神様を信じてください。 神様を信じて、傷つけた人は直ちに反省して悔い改め、傷を受けた人は彼の反省して悔い改める心を見て、直ちに暖かく赦してください。
それがまさに神様が私たちにお望みになるみ旨だと私は思います。
以上です。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오늘 복음 말씀을 풀이하면 이렇습니다.
누가 너에게 상처를 주면 겁먹지 말고 그 앞에서 즉각적으로 자기 감정을 표현하여 상처를 준 사람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려 주고, 만일 그가 자기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와서 뉘우치면 기꺼이 용서를 해 주어라라는 뜻입니다.
뉘우치지도 않는데 무조건 용서해 주라는 말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뉘우치지 않으면 용서해 주지 말아야죠. 그러나 내게 상처준 사람이 정말로 가슴 깊이 반성하고 뉘우친다면 그 때에는 비로소 너그럽게 용서해 주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면 반성하고 뉘우쳐야 하며, 반대로 내게 상처 준 이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뉘우친다면 다시 형제로 받아들이며 따뜻하게 안아주어라는 말씀입니다.
일본이 과거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하여 반인륜적인 행위를 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많은 한국인들은 너그럽게 안아줄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반성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잘못은 없다고 우긴다면 한국은 일본을 용서할 의사가 없습니다.
이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회개하여 다시 예전처럼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아주 고차원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기다려 주는 것이니까요. 예수님께서는 비록 지금 내게 상처 준 이가 뉘우치지 않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를 포기하지 말고 그가 회개하여 돌아올 수 있도록 기다려 주라는 것입니다. 사랑의 시작은 기다림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의 핵심 메시지는 다름아닌 내게 상처를 준 내 형제가 회개하여 돌아올 수 있도록 끝까지 기다려 주고 마침내 그가 회개한다면 즉시 그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런데 자기 잘못을 반성하는 일과 용서를 청하는 일, 그리고 용서해 주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고요?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작은 반성의 마음 혹은 겨자씨 한 알만한 작은 용서의 마음 하나라도 있으면 나머지는 성령이신 하느님께서 알아서 화해로 잘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그러니까 여러분, 하느님을 믿으십시오. 하느님을 믿고, 상처를 준 사람은 즉시 반성하고 뉘우치고, 상처를 받은 사람은 그의 반성하고 뉘우치는 마음을 보고 즉시 따뜻하게 용서해 주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1月10日 聖レオ一世教皇教会博士 お説教

皮膚病を患っている10人がイエス様がいらっしゃる道に向かい合って来ました。 でも、自信がないのかどうかわかりませんが、遠くに立って声だけ上げて叫びました。
おそらく、皮膚病を患っている人々は皮膚病のない他の人のそばに行ってはいけないという慣習どおりにそうしたのだと思います。
イエス様も、遠く立っている皮膚病を患っている人々に近づかず、イスラエルの慣習どおり司祭に行って確認を受けなさいとだけおっしゃいました。
彼らが道を行く途中に彼らの皮膚病が治りました。 でもね。 10人ではなく彼らの中の一人だけがイエス様に戻ってきて伏せて感謝をささげました。
彼はサマリア人だったそうです。 
知ってますよね?サマリア人は当時イスラエルでは人として扱われなかった人たちだったという事実を。
神の子に戻ってきて感謝の挨拶をしたおかげで、そのサマリア人は病気の治癒だけでなく、魂の救いまで贈られたのです。
皆さん、私たちが救われるために一番必要なものが何なのか、すぐに気づいたのだと思います。 そうです。まさに感謝です。 今日のサマリア人の例がそれを証ししています。
神様が私たちに一番お望みになる望みがまさにいつも感謝して生きることです. 誰に?今日も命を与えた神様にですね。
正直、私たちの中にご聖体を迎えて感謝の祈りをする人が果たして何人いるでしょうか? 
そしてミサそのものが感謝の祈りです。 果たしてこの世で洗礼を受けた信者の何人が毎週日曜日に感謝の祈りであるミサに与るのですか。私がこの5年間見守った結果、極めて少数のお年寄りだけが与っているのが、今現在の日本教会の現実です。日本教会のほとんどの若者の信者は日本で住んでいる外国人信者たちです。だから、今現在の日本教会で今日の福音のように神様に戻ってきて感謝の祈りをささげる信者はお年寄りと外国人若者だけです。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の核心メッセージでした。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나병환자 열 사람이 예수님이 가시는 길에 마주 왔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없는 지 모르겠지만 멀찍이 서서 소리만 높여 외쳤습니다. 
아마도 나병환자는 나병이 없는 다른 사람들 곁에 가서는 안된다는 관습대로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멀찍이 서 있는 나병환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이스라엘의 관습대로 사제들에게 가서 확인 받아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길을 가는 도중에 그들의 나병이 다 나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열 사람이 아니라 그들 중의 한 명만 예수님께 다시 돌아와 엎드려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아시죠? 사마리아 사람은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사람 대접받지 못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하느님의 아들에게 돌아와 감사 인사를 한 덕분에 그 사마리아 사람은 병의 치유 뿐만 아니라 영혼의 구원까지 선물받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금방 눈치채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감사입니다. 오늘 이 사마리아 나병환자의 예화가 그것을 아주 잘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뜻이 바로 항상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누구에게요? 바로 오늘도 생명을 주신 하느님에게요. 
솔직히 우리 중에 성체를 모시고 감사기도를 드리는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리고 미사 자체가 감사기도입니다. 과연 이 세상에 세례받은 신자들 중 몇명이 매주 감사기도인 미사에 참례합니까? 제가 지난 5년간 지켜본 결과 지극히 적은 수의 노인들만 참여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일본 교회의 현실입니다. 일본 교회의 대부분의 젊은 신자는 일본에 살고 있는 외국인 신자들입니다.그러니까 오늘날 일본 교회에서 오늘 복음말씀처럼 하느님께 돌아와 감사 기도를 드리는 신자는 노인과 외국인 청년뿐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의 핵심 메시지였습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1月13日 土曜日 年間第32土曜日 お説教

イエス様は世の中で様々な良くない現象が起きても気をおとさずに絶えず祈りの生活を頑張れという意味で今日の福音のような例え話を聞かせてくださいました。
イエス様は例え話で祈りを求める対象をやもめにしていましたが、やもめは知ってるように頼る所のない、その時代の典型的な貧しい人でした。 誰もやもめを守ってくれる人はいなかったです。 裁きを受けてもいつもやもめに不利でした。 当時も今現在の日本のように被害者ではなく、加害者中心主義でした。 加害者の人権、特に金持ちで権力が強い男性中心の社会構造でした。
このような時代を生きるやもめが被害を受けて裁きを受けても結果はいつも不利でした。 だからこそ、この不正な裁判官に対抗してやもめができた唯一の努力は、疲れないし、裁判官を面倒なくらいねだるだけだったのです。
イエス様がこのような話を例え話でおっしゃった理由が何でしょうか? 不正な裁判官も疲れずにねだると、やむを得ず弱い者の話を聞いてくれるが、まして慈しみ深い神様はどうですかとおっしゃって、世の中が様々な悪い現象が起きても希望を失わず、神様に対する信仰を失ってしまうなという意味ではないでしょうか。
では、神に対する信仰は何ですか? それは見たがる心です。神に会いたがる心、それが他でもなく神に対する信仰なのです。 好きな人がいる時、皆さんはどうしますか? 若い頃恋愛した時を思い出してみてください。 昔のことなので覚えていませんか? 好きな人ができたら、その人に会いたくてよく会ったりしますが、会えない時はメッセージもよく送るし、電話もよくします。 皆さんの若い時代には手紙をよく書いたでしょうね。
ところで、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の最後で、イエス様は何か意味深いみことばをおっしゃいました。 神の子が再びこの世に戻ってくる時、人々は、信者という人々も、神の子に会いたがっているだろうかとおっしゃいました。 みんな、自分の人生で忙しいから…と嘆いたことで、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は終わりました。
皆さんもそうですか? 神の子、救い主イエス様に会いたくないですか? 皆さんは一日の間、どのくらいたびたびイエス様に会いたがりますか?
一つだけ言えば、イエス様がたびたび会いたければ、絶えずお祈りするに決まっています。 さらに、私たちはご聖体を迎えてそれぞれ自分の家に帰るので、家でもその気になればいくらでも、自分の中に迎えられたイエス様とたくさんの会話ができることでしょうか。 そうじゃないですか?
以上です。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이런저런 안좋은 현상이 일어나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기도 생활을 열심히 하라는 뜻에서 오늘 복음과 같은 비유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 이야기에서 기도를 청하는 대상을 과부로 삼으셨는데, 과부는 알다시피 의지할 곳이 없는 그 시대의 전형적인 가난한 사람이었죠. 그 누구도 과부를 지켜 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재판을 받아도 늘 과부에게 불리했었죠. 당시에도 오늘날 일본처럼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중심주의였습니다. 가해자의 인권, 특히 돈 많고 권력이 강한 남성 중심의 사회 구조였었죠.
이러한 시대를 사는 과부가 피해를 당해 재판을 받아도 결과는 늘 불리하였죠. 그렇기 때문에 이 불의한 재판관에 대항하여 과부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노력은 지치지 않고 재판관이 귀찮을 정도로 졸라대는 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불의한 재판관도 지치지 않고 졸라대면 마지못해 약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데, 하물며 자비로우신 하느님은 어떠하시겠냐고 하시며, 세상이 이런저런 안좋은 현상이 일어나더라도 희망을 잃어 버리지 말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잃어 버리지 마라라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보고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하느님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 그것이 다름아닌 하느님께 대한 믿음인 것입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젊었을 때 연애하던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기억이 나지 않습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이 자꾸 보고 싶어 자주 만나기도 하지만, 만나지 못할 때는 메시지도 자주 보내고, 전화도 자주 합니다. 여러분의 젊었던 시대에는 편지를 자주 썼겠네요.
그런데 오늘 복음 말씀의 마지막에서 예수님께서는 뭔가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실 때 과연 사람들이 심지어 신자라고 하는 사람들도 하느님의 아들을 보고 싶어 할까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들 자기 삶을 사느라 바빠서 라고 한탄하신 것으로 오늘 복음 말씀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습니까?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 예수님이 보고 싶지 않으세요? 여러분은 하루 동안 얼마나 자주 예수님이 보고 싶으십니까?
한가지만 말하자면, 예수님이 자주 보고 싶다면 자주 끊임없이 기도하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성체를 모시고 각자 자기 집으로 가니, 집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내 안에 모셔진 예수님과 얼마나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이상입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1月14日 日曜日 年間第33主日 お説教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は、典礼のカレンダーにおいて毎年の年間時期の最後となる毎年聞くことができる福音のみことばです。
終末に関する福音のみことばです。 この世の終わりに神の子がどのようにこの世に再びいらっしゃるのか、具体的に知らせてくれるみことばだと言えます。
でも、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の通り、実際にこのように行われるかどうかは誰も分かりません。 福音の著者であるマルコは、この福音のみことばをまるで夢で見たように表現したのか、それとも例え話で表現したのか、それともストレートで書いたのか、その意図がはっきり分からないからです。
でも、確実に分かることが二つあります。
一つは、イエス様がいちじくの木の例を挙げたように、神の子が人々の中に相変わらず存在しているということをしっかり悟れということで、
もう一つは、最終的に神の子が裁判官の姿で来ることになる最後の時は、父である神以外は誰も知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
分かりましたか?
それでは、はっきりと分かること一つについて皆さんにお話します。
それは、神の子がこの世に存在していらっしゃるということ、つまり、神の国が天の遠くにあるのではなく、私たちが足を踏み入れている、この場所に存在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
それでは、神の国の形はどのようなものでしょうか。気になりますか? それは、第二朗読でおっしゃったとおり、唯一のいけにえとして献げられた尊い犠牲の祭祀の形で私たちに見せ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 それでは、その聖なる犠牲の祭祀は、果たしてどのような形でしょうか。
まさにご聖体秘跡です。 ミサです。つまり、ご聖体秘跡の形で神の国は私たちの中に存在し、そのご聖体を迎えた人々の中に生々しく現存しているのです。
もう分かりましたか。 ご聖体秘跡の形で私たちに来られたその神の子が、私たちに声をかけているのです。 「お互いに愛しなさい」と。 そして「お互いに仕えなさい」と。さて、だから、皆さん、私たちに声をかけてくる神の子の声にたびたび目をつぶって、自分の心臓に耳を当てて、耳を傾けてみましょう。 暇ができるたびに目をつぶって、自分の心臓に耳を当てて、耳を傾けてみましょう。 自分の中に入ってきた慈しみ深い神の子が、自分に何度も話しかけてくるからです。
自分にずっと話しかけてくる神様が、最後の裁きの時、誰が最終的に救われるかについておっしゃいました。 マタイによる福音書25章31節から46節までのみことばです。 私たちの中で最も小さな者によくもてなしてくれた人々、つまり、私たちの中で最も貧しい人々、そして最も苦しんでいる人々の手を握ってくれた人々、彼らに自分の時間を出してくれた人々、まさにそんな人々が最後の裁きの時に神の子が直接選択することになるでしょう。
特に今日は、フランシスコ教皇様が宣言された世界の貧しい人々のために祈り、奉仕し、時間を出して彼らの手を握る日です。 したがって、皆さん、この世の最後の時に神の子から選択を受けたいですか? それでは、すぐに貧しい人々、弱い者の味方になってください。 彼らの手を握ってあげ、喜んで彼らのために時間を出してください。 そうすれば、皆さんは天国の生活を生きることができるでしょう。
以上です。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오늘 복음 말씀은 전례력에서 해마다 연중 시기의 마지막이 되는 해마다 들을 수 있는 복음 말씀입니다.
종말에 관한 복음 말씀이죠. 세상 종말에 하느님의 아들께서 어떻게 다시 이 세상에 오실 지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 말씀대로 실제로 이렇게 이루어질 지 아닐지는 그 누구도 모릅니다. 복음서 저자 마르코는 이 복음 말씀을 마치 꿈에서 본 것처럼 표현한 것인지 아니면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인지 아니면 직접적으로 적은 것인지 그 의도가 분명하게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무화과나무의 예를 드신 것처럼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들 가운데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깨달아라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최종적으로 하느님의 아들이 심판자의 모습으로 오시게 될 마지막 때는 성부 하느님 말고는 그 누구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한 가지에 대해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계시다는 것, 즉 하느님의 나라가 하늘 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늘나라의 형태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시죠? 그것은, 제2독서에서 말씀하신 대로 단 한번 제물로 바쳐진 거룩한 희생 제사의 형태로 우리에게 보여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 거룩한 희생 제사의 형태는 과연 어떤 형태입니까?
바로 성체성사이죠. 미사입니다. 즉, 성체성사의 형태로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존재하며, 그 성체를 모신 사람들 안에 생생하게 현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아시겠습니까? 성체성사의 형태로 우리에게 오신 그 하느님의 아들께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또 '서로 섬기라'고.
자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에게 말을 걸어 오시는 하느님의 아들의 목소리에 자주 자주 눈을 감고 내 심장에 귀를 대고 귀를 기울여 봅시다. 틈날 때마다 자주 자주 눈을 감고 내 심장에 귀를 대고 귀를 기울여 봅시다. 내 안에 들어오신 우리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아들께서 내게 자꾸 말을 걸어 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게 자꾸 말을 걸어 오시는 하느님께서 최후의 심판 때에는 누가 최종적으로 구원받는 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마태 복음 25장 31절부터 4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우리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들에게 해준 사람들, 즉 그러니까 우리 중에 가장 가난한 이들 그리고 가장 힘들어 하는 이들의 손을 잡아 준 사람들, 그들에게 자기 시간을 다 내어 준 사람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최후의 심판 때에 하느님의 아들께서 직접 선택하시게 될 것입니다.
특히 오늘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세계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봉사하며 자기 시간을 내어 주고 그들의 손을 잡아 주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세상 마지막 때에 하느님의 아들로부터 선택받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지체없이 가난한 사람들, 약자들의 편이 되십시오. 그들의 손을 잡아 주고 그들을 위해 자기 시간을 기꺼이 내어 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천국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1月16日 火曜日 年間第33火曜日 お説教

今日の第一朗読のみことばと福音のみことばを聞いて、どんな気がしましたか? 
私はこんな気がしました。
少なくともイエス様に従う人たちはこうしなければならないだろうと思いました。 
今日の第一朗読のみことばで示したエレアザルという90歳の律法学者は、死の前でも律法を守る勇気を見せてくれました。 死を前にして律法が禁止する豚肉を食べたふりようにできるでしょうが、彼はそうしませんでした。 彼は堂々と律法が禁止する豚肉を拒否したことで、当時のユダヤ人の若者たちの模範になりました。
いくら国とその社会の法が要求するものだとしても、神が与えた良心に反するものなら過半数の人々が賛成したとしても拒否することができ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 例えば、もう日本の自民党は、平和憲法の改正を通して戦争可能な国にしていくことになるでしょう。 日本の過半数の人たちが自民党を支持したからです。 でも、これは神様の良心に反するものです。 戦争で幸せになる人は誰もいません。また日本は韓国の終戦宣言も反対しました。 朝鮮半島が戦争状態になってこそ日本が生きられるというおかしな論理で反対しているのです。
戦争はまさに死です。 日本の平和憲法改正を支持する日本国民が過半数だとしても、皆さんは神様からの良心に手をつけて反対をすべきでしょう。 死を覚悟してでも反対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います。 90歳のエレアザルを見てください。 死の前に順番はないと言いますが、正直に言えば、皆さんは次の世代のためにこれからは自分の主張をあきらめて若い世代に譲べき時だと思います。 これから生きていく日が皆さんより若い世代により多く残っているからです。
教会も同じです。 教会がなくなっていたら、それも神のみ旨かもしれません。 皆さんが全部死んで、まったく新しい人々でこの教会を満たすかどうか、分からないのです。 だから、神のみ旨に従う心と死の前でも、怖がらない勇気を持ってほしいです。
そして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で示したザアカイも、大きな決心と勇気を見せてくれました。 イエス様に会えば誰でも過去の生きた人生とは全然違う180度の人生を生きるものです。 金持ちだったザアカイにとって財産の半分を貧しい人々に施すというのは簡単なことではない態度です。 相当な勇気でなければ不可能でしょう。 でも、ザアカイはイエス様に会った以降、その不可能なことを実現しました。 彼の勇気も見習って、私たちも過去の人生とは180度違う人生の変化を作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うしなくては私たちには「救い」はありません。 以上です。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오늘 제1독서 말씀과 복음 말씀을 듣고 난 후 무슨 생각이 드셨습니까?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예수님을 따라간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래야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 말씀에서 보여진 엘아자르 라는 구십이 넘은 한 율법학자는 죽음 앞에서도 율법을 지키려는 용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율법이 금지하는 돼지고기를 먹은체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당히 율법이 금지하는 돼지고기를 거부함으로써 당시 유대 젊은이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그 국가와 그 사회의 법이 요구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주신 양심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찬성한다고 할지라도 거부할 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제 일본 자민당은 평화 헌법 개정을 통해 전쟁 가능한 국가로 만들어 가게 될 것입니다. 일본의 과반수의 사람들이 대부분 자민당을 지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양심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전쟁으로 행복해지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한 일본은 한국의 종전선언도 반대했습니다. 한반도가 전쟁 상태이어야 일본이 살 수 있다는 이상한 논리로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은 곧 죽음입니다. 일본의 평화 헌법 개정을 지지하는 일본 국민이 대부분이라고 할지라도 여러분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양심에 손을 대고 반대를 해야 할 것입니다. 죽음을 무릎쓰고서라도 반대를 해야 할 것입니다. 아흔이 넘은 엘아자르를 보십시오. 죽음 앞에 순서가 없다고 말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여러분은 다음 세대를 위해 이제는 자기 주장을 포기하고 젊은 세대에게 양보를 해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여러분 보다는 젊은 세대에게 더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니까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없어져 간다면 그것도 어쩌면 하느님의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다 죽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로 이 교회를 채우실지 아닐지는 모를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과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지니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 말씀에서 보여진 자캐오도 큰 결심과 용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누구나 과거의 살았던 삶과는 전혀 다른 180도의 삶을 살기 마련입니다. 부자였던 자캐오의 입장에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태도입니다. 왠만한 용기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겠죠. 그러나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그 불가능한 것을 실현했습니다. 그의 용기도 본받아 우리도 과거의 삶과는 180도 다른 인생의 변화를 이루어야 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우리에게 구원은 없습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1月17日 ハンガリーの聖女エリザベスの記念日 お説教

今日の福音で聞いた十ムナの例え話を、簡単に核心だけ要約してお話します。
まず10人に1ムナずつ均等に分配されました。 これは神の恵みがすべての人に均等に与えられたという意味です。 つまり、全ての人に神の愛が与えられたということです。
当時のイスラエルのお金価値で見ると、一デナリオンは労働者の1日の給料に該当する金額です。 じゃあ、一ムナはいくらですか。一ムナは百デナリオンです。 ですから、一ムナを日本円に換えると、100万円くらいの金額です。 
つまり、それぞれの人は神様から十分な神の愛と恵みを受けたということを意味します。
主人がしもべをもう一度呼んで計算をしました。 これは何でしょうか。 私審判ですね。それぞれの人は死んで神の前に呼び出されてこの世にいた時にそれぞれ受けた神の愛でどうやってその愛を2倍、または、3倍または、10倍などともうけたのか裁きを受けることになるという話です。
その中で自分に与えられたムナを使わないまま主人に呼ばれてきた人がいましたよね? この人はどういう人ですか? それは、自分が受けた神の愛を全く隣人のために施していない、非常にケチな人でしょう? それとも隣人愛に無関心で自分や自分の家族しか知らなかった人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そんな人の終末についても例え話でおっしゃいました。 私審判の時にその人に与えられた神の愛まで取り上げて、天国で永遠の命を得た人々のもとに帰ることになるだろうとおっしゃいました。 
そして、隣人愛にケチなその人は滅びるだろうと警告しました。
今日はハンガリーの聖女エリザベトの修道者の記念日です。 聖女は在属フランシスコ会所属の修道者で、自分が受けた裕福な財産を貧しい人々のために全部施した施しの守護聖人です。 今現在にも貧しい人が本当に多いです。 特にコロナのため貧しい人々がとてもたくさん増えました。 このような時期に、わがキリスト信者たちがすべきことは何なのか、私がいちいち言わなくても皆さんはみんな知っているはずです。 
以上です。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오늘 복음 말씀에서 들은 열 미나의 비유 이야기를 간단하게 핵심만 요약하여 말하겠습니다. 
먼저 열 사람에게 한 미나씩 동등하게 분배되었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즉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화폐 가치로 보면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일당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그럼 한 미나는 얼마냐? 한 미나는 백 데나리온입니다. 그러니까 한 미나를 엔화로 바꾸어 말하면 약 100만엔 정도 되는 금액입니다. 
그러니까 각 사람은 하느님에게서 충분한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주인이 종들을 다시 불러 들여서 계산을 합니다. 이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사심판이죠. 각 사람은 죽어서 하느님 앞에 불려 가 세상에 있을 때 각자 받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어떻게 그 사랑을 두 배 혹은 세 배 혹은 열배 등으로 불렸는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중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미나를 사용하지 않은 채 주인에게 불려 온 이가 있죠? 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가 받은 하느님의 사랑을 전혀 이웃들을 위해 베풀지 않은 아주 인색한 사람이겠죠? 아니면 이웃 사랑에 무관심하고 자기나 자기 가족 밖에 몰랐던 사람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의 종말에 대해서도 비유로 말씀하셨어요. 사심판 때에 그 사람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사랑마저 거두어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이미 차지한 사람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사랑에 인색한 그 사람은 멸망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오늘은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입니다. 성녀는 재속 프란치스코회 소속 수도자로 자신이 받은 부유한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모두 베푼 자선 사업의 수호 성인이십니다. 오늘날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특히 코로나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이 무척 많이 늘었어요. 이러한 시기에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이 해야할 일은 무엇인지 제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은 다 알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1月19日 金曜日 年間第33金曜日 お説教

イエス様が神殿をきれいにした事件は文字通り神殿の中で商売をしていた人々を追い出した事件でした. でも、今日の福音では、言われませんでしたが、ヨハネによる福音、二章十九節に「この神殿を壊してみよ」とおっしゃったことから、イエス様が神殿をきれいにした事件は単純な事件で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
イエス様はあなたご自分の御体を指して神殿とおっしゃいました。 このみことばはイエス様に従う弟子たちにも適用されます。 使徒パウロは、二コリント6章16節で「わたしたちは生ける神の神殿」とおっしゃいました。 つまり、キリストに従うキリスト信者たちはみんな、神の神殿なのです。 なぜなら、キリスト信者たちは聖なるに変化されたパンとぶどう酒を、自分の体の中に迎えているからです。だからキリスト信者たちは動く、あるいは歩く聖堂なのです。
さて、今日の福音からの神殿をきれいにした事件とはどういう意味ですか?
答えがすぐに出ますよね? イエス様が歩く聖堂であるキリスト信者たちを、今日も同じようにきれいにさせ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もし私たちがキリスト信者らしく生きることができず、私たちの魂が汚されているとすれば、治癒者イエス·キリストは私たちをきれいにさせてくださるということです。
それは何ですか。 「赦しの秘跡」ですね。 つまり、赦しの秘跡を通してイエスキリストは私たちの汚された魂を洗礼を受けた時のようにきれいにしてくださるということです。 そうじゃないですか? 私の話が間違っていますか。
もちろん、きちんと告解してきれいになるためには、きちんとした悔い改めと反省が必要です。 嘘ではなく真剣に自分の罪を見つめながら真実を反省しなくてはイエス様からきれいに赦されることはないということです。
そして、私たちは全員ご聖体を迎えた動く聖堂なので、私たちの言葉や行動に気をつけ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 つまり、世の中の人々が生きているように生きないように注意してください。もし、キリストに従わない他の一般人のように話し行動して生きるなら、再びイエス様は手にムチを持って私たちの魂の中にいる悪い悪の群れを追い払うでしょう。でも、その痛みはすごく痛いですよね?
だから、使徒パウロがローマの信徒への手紙13章13節のように、「日中を歩むように、品位をもって歩もうではありませんか。酒宴と酩酊、淫乱と好色、争いとねたみを捨てるように」気をつけなければなりません。ちなみに、人々の多い飲食店や居酒屋、温泉などには行かないように注意してください。 日本政府がコロナ検査をしていないので、さらにわからない状況になってしまったからです。 以上です。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신 사건은 말 그대로 성전 안에서 장사하던 이들을 쫓아 내신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는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요한 복음 2장 19절에 '이 성전을 허물어라'라고 말씀하신 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신 사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을 가리켜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사도 바오로는 2코린 6장 16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 신자들은 모두 하느님의 성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신자들은 거룩하게 변화된 빵과 포도주를 자기 몸 안에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신자들은 움직이는, 걸어 다니는 성당인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 복음 말씀에서의 성전 정화 사건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답이 바로 나오죠? 예수님께서 걸어다니는, 움직이는 성당인 그리스도 신자들을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정화 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그리스도 신자답게 살지 못하여 우리 영혼이 더럽혀져 있다면 치유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께끗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고해성사이죠. 고해성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더럽혀진 영혼을 세례성사를 받았을 때처럼 깨끗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 말이 틀렸어요?
물론 제대로 고해성사를 통해 깨끗하게 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회개와 통회가 필요합니다. 속이는 것 없이 진지하게 자기의 죄를 들여다 보면서 진실하게 뉘우치지 않고서는 예수님으로부터 깨끗하게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성체를 모신 움직이는 성당이므로 우리의 말과 행동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즉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살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만일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다른 일반인들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산다면 다시 한번 예수님께서는 손에 채찍을 들고 우리 영혼 안에 사는 나쁜 악의 무리를 쫓아내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픔은 좀 많이 아프겠죠?
그러므로 사도 바오로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처럼 (13장 13절)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있게 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사람들이 많이 모인 식당이나 술집, 목욕탕 등에 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일본 정부에서 코로나 검사를 이제는 아예 하지 않아서 더욱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상입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1月21日 日曜日 王であるキリスト

今日は教会のカレンダーで年末です。 今年の最後の週間です。 教会は伝統的に一年の最後の主日を王であるキリストの大祝日として過ごし、その週間を聖書週間に定め、普段より聖書のみことばをもっとたくさん読み黙想するようにとお勧めしています。
実は、私たちがイエス様を王と高めなくても、その方は相変わらず王でございます。 イエス様は一度もあなたご自分を王とおっしゃったことがありません。 今日の福音で聞いたように、ピラトは、人々が陰で言った言葉を持ってイエス様に聞きました。 「お前がユダヤの王なのか?」
実はイエス様は一度もご本人の口でユダヤ人の王だとおっしゃったことがありません。 しかし、ピラトは「見ろ。 人たちが言ってないか? お前がユダヤの王だと言ったんだよ」って。
あきれることです。そうでしょう? 福音書のどこにも、イエス様自分であなた自身を指して「ユダヤ人の王」だと呼んだことがありません。 むしろイエス様はあなたご自分の国はこの世ではないとおっしゃいました。 それでもピラトは、イエス様は王ではないのか、しつこく問いただしました。
イエス様ははっきり教えてくださいました。 「わたしが王だとは、あなたが言っていることだ。わたしは神の国の福音を証しをするために生まれた」とイエス様自分でアイデンティティをしっかり教えてくださいました。
ところで、結果はどうなりましたか。 結局、イエス様は陰口の結果、またはフェイクニュースの結果で「ユダヤ人の王、ナザレイエス」という罪で死刑に処せられました。
日本のことわざにこんなことわざがあります。 「100回主張すれば真実になる」。 これは嘘も100回主張すればすぐに真実になるという意味ですが、ちょうど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と一致するようですね。
イエス様はまさにこのような人たちのフェイクニュースや陰口で亡くなられたのです。 フェイクニュースと陰口がどれだけ残酷で恐ろしいのか知ってますよね。 フェイクニュースや陰口が、全世界の王であるキリストを死なせたのです。
ところが、この陰口とフェイクニュースが、この共同体、いや日本教会の全体に、相変わらず広がっています。 誰か気にくわない一人が、自分のレーダーに入ってくると、その人を自分と話が合う輩に共有して、その気にくわない人を陰口にして、その人が共同体の中で住めないようにする非常におかしいいじめが、この日本教会の中に広まっています。
明らかに全世界の王であるイエス·キリストが、そのようなフェイクニュースや陰口で亡くなったにもかかわらず、日本のキリスト信者たちは、昔イエス様を殺した群れと同じ方法で同じ同僚信者たちにも行っているというのです。
今現在のこの日本教会の信者たちはこのようにして、自分も知らないうちにもう一度、全世界の王であるキリストを苦しめて殺しているというのです。 同僚の信者をいじめることは、その信者の中に生きておられるイエス様を殺すことだということを知らないまま。
とても悲しいことです。 全世界の王であるキリストの大祝日に、このように心の痛むことを伝えることができて残念です。 でも、この日本教会の中に根深く刺さってしまったこれを言わずに覆ってしまったら、果たしてどうなるでしょう? いざ私たちの救いはどうなるでしょうか。
「臭いものは蓋をする」という日本のことわざが思い出します。 蓋をしないでほしいです。 蓋をしても匂いが消えるわけではないですよね? 臭いを消さないといけません。 日本教会の中に根深い悪行があったら、それを1日も早く取り除いたほうがいいと思いますが。 1日も早く取り除くということは、こんな陰口を一切やらないことです。 そしてコロナも蓋をしないで、きちんと検査から一歩一歩やってほしいですね。
以上です。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오늘은 교회 달력으로 연말입니다. 올 해의 마지막 주간입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지내며 그 주간을 성서 주간으로 정해 평소보다 성서 말씀을 더 많이 읽고 묵상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예수님을 왕이라고 높여 부르지 않아도 그분은 여전히 왕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단 한번도 당신 스스로 왕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들은 것처럼, 빌라도가 사람들이 뒤에서 험담한 말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유다인의 왕이냐고?'
사실 예수님께서는 단 한번도 본인 입으로 유다인의 왕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그런데 빌라도는 '봐라. 사람들이 말하고 있지 않냐? 니가 유다인의 왕이라고 말했다고.'
기가 막힐 일입니다. 그죠? 복음서 어디에도 예수님 스스로 당신 자신을 가리켜 유다인의 왕이라고 하신 적이 없어요.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당신 나라는 이 세상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빌라도는 예수님이 왕이 아니냐고 끈질기게 캐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확실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가 임금이라고 니가 말했어. 나는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하려고 태어났을 뿐이야'라고 예수님 스스로 정체성을 확실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죠? 결국 예수님께서는 뒷담화의 결과로 또는 가짜뉴스의 결과로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라는 죄목으로 사형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일본 속담에 이런 속담이 있죠. '100번 주장하면 진실이 된다'. 이는 거짓말도 100번 주장하면 곧 진실이 된다라는 말인데, 딱 오늘 복음 말씀과 일치하는 것 같네요.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가짜뉴스와 뒷담화로 돌아가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짜뉴스와 뒷담화가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운지 아시겠죠? 가짜뉴스와 뒷담화가 온 누리의 임금이신 그리스도왕을 죽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뒷담화와 가짜뉴스가 이 공동체 아니 일본 교회 전체에 여전히 퍼져 있습니다. 누구 한 명 못마땅한 사람 한 명이 자기 레이더 안에 들어오면 그 사람을 자기와 말이 통하는 무리에게 공유하여 그 못마땅한 사람을 뒷담화하여 그 사람이 공동체 안에 발을 딛고 살지 못하게 만드는 아주 이상한 방식의 왕따가 이 일본 교회 안에 퍼져 있습니다.
분명히 온누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런 가짜뉴스와 뒷담화로 돌아가셨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그리스도 신자들은 옛날에 예수님을 죽였던 무리와 똑같은 방식으로 같은 동료 신자들에게도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일본 교회 신자들은 이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한번 온누리의 임금이신 그리스도왕을 괴롭히고 죽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동료 신자를 험담하는 것은 곧 그 신자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죽이는 것임을 모른 채 말이죠.
아주 슬픈 일입니다. 온 누리의 임금이신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이렇게 마음 아픈 것을 전하게 되어 유감입니다. 하지만 이 일본 교회 내에 뿌리 깊숙이 박혀 버린 이것을 말하지 않고 덮어 버린다면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정작 우리의 구원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냄새나는 것은 뚜껑을 덮는다' 는 일본 속담이 생각이 납니다. 뚜껑을 덮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뚜껑을 덮는다고 냄새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냄새나는 것을 제거를 해야죠. 일본 교회 안에 뿌리깊은 악행이 있다면 그것을 하루 빨리 제거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만. 하루 빨리 제거하는 일은 이러한 뒷담화를 일체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코로나도 뚜껑을 덮지 말고 제대로 검사부터 한걸음 한걸음씩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1月22日 月曜日 聖セシリアの記念日 お説教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を単刀直入に言えば、イエス様はエルサレムの神殿の税金を取り立てて自分たちの利益を満たしている神殿の権力者たち、当時のイスラエルの宗教指導者たちを批判されたみことばだと言えます。 つまり、貧しいやもめの一食分の食事の金額まで奪ってしまった残酷な当時の権力者たちを非難したと言えます。
今現在の日本で言えば、コロナが相変わらずひどく流行し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むしろ検査代を高く上げて国民が自由に検査を受けさせないようにするとか、そして検査数そのものを減らすとか、そして国民の経済が厳しいという言い訳を例に挙げて旅行を勧めとか、そして税金をもっと上げて権力者たち自分の利益だけを考えることと違わないと思います。 実際、たびたび飢える貧しい人々は無視するくせに。
イスラエルではやもめでいえば最も貧しい人の一部類です。 ギリシア語の「貧しい」という言葉は実際お金がなくてご飯を飢えている人のことです。 当時イスラエルではやもめは誰も頼る人がいなかったので、毎日のご飯を食うのもかなり大変な立場だったのです。
そのような貧しい人々でさえ、神殿に入る時、色々なの税金と献金を出させた当時の宗教指導者たちをイエス様は批判し、嘆いたと言えます。
今現在の日本でも同じですね。 毎日コメがなくて飢えている人々が増え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この日本という国はそれを隠していますから。 さらに、札幌教区でも、ホームレスの支援団体に1円も支援していないそうです。
キリスト信者たちは他人を助ける人です。 それが私たちのアイデンティティです。 特に一番貧しい人、一番弱い人を助けてくれるのが、キリスト者なのです。 きちんと信仰生活をしたいなら、貧しい人々に行って彼らを助けてください。
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が伝えるメッセージはおそらくこれ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が、皆さんはいかがでしょうか? 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오늘 복음 말씀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성전세금을 거두어 자기들의 이익을 채우고 있는 성전 권력자들,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을 비판하신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가난한 과부의 한 끼 식사 정도 되는 금액까지 빼앗아버린 아주 잔혹한 당시 권력자들을 비난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일본으로 치면, 코로나가 심하게 유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검사비를 비싸게 올려 국민들이 검사를 받지 못하게끔 한다든지, 혹은 검사 수 자체를 줄여 버리고 국민의 경제가 어렵다는 핑계를 예로 들어 여행을 장려한다든지 혹은 세금을 더 올려 권력자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밥을 굶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은 무시하면서.
이스라엘에서는 과부로 말하면 가장 가난한 사람의 한 부류입니다. 희랍어에서 '가난하다' 라는 말의 뜻은 실제로 돈이 없어 밥을 굶는 사람을 뜻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과부는 누구에게도 의지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하루하루 밥을 먹고 살기도 꽤 힘든 처지였던 것입니다.
그런 가난한 사람들에게조차 성전에 들어올 때 각종 세금과 헌금을 내게 한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예수님께서는 비판하시고 한탄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이죠. 매일 쌀이 없어 굶고 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일본이란 나라는 그것을 감추고 은폐하기 바쁘니까요. 심지어 삿포로 교구에서도 노숙자 지원 단체에 1엔도 지원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 신자들은 남을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그게 우리의 정체성이죠. 특히 가장 가난한 사람, 가장 약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이들이 다름아닌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제대로 신앙 생활을 하고 싶으시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서 그들을 도와 주십시오.
오늘 복음 말씀이 전해 주는 메시지는 아마도 이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1月24日水曜日  ベトナム教会の殉教聖人の聖アンデレ·ジュン·ラク司祭と同志殉教者の記念日 お説教

今日はベトナム教会の殉教聖人の聖アンデレ·ジュン·ラク司祭と同志殉教者の記念日です。
アンデレ·ジュン·ラク司祭は1785年から1839年まで生きられました。
ベトナム教会は1533年にカトリック教会が伝われました。 そして1625年から1886年まで53回ほど、カトリック教会に対する迫害があったそうです。 当時殉教した殉教者たちは約33万人だったそうです。
聖アンデレ·ジュン·ラク司祭は1785年、貧しい家で生まれました。 司祭の叙階の後、ベトナムの様々な地域に通い、頑張って宣教したそうです。
そして捕まり、1839年に首を切られて殉教したそうです。 その方は同志殉教者の117名の殉教者たちと共に1888年6月19日に教皇ヨハネ·パウロ2世によって聖人になりました。
私もベトナム教会の聖人たちについて知りませんでしたが、今回に調べてみることになりました。
イエス様は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でおっしゃいましたね。 イエス様あなたご自分のため迫害を受ける時が来ると。 さらには、自分と最も親しい両親、兄弟、友人、親戚にまで告発されるだろうと。 どんな方法を使ってでも私たちをいじめることになるとおっしゃいました。
でも、イエス様は私たちに対するそんな攻撃に対して抵抗する武器をくださいました。 それは、いかなる反対者も対抗も反論できないような言葉と知恵をくれました。 そして永遠の命を許してくださいました。
どんな反対者も反論できないような言葉と知恵、これはこの世で生きていくために私たちに力を与えてくださったと思います。 そして殉教された時は永遠に神の国で生き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神の国の命まで喜んで許したと、私ははっきり信じて確信します。
だからキリスト信者の皆さん、神様のこのような愛と配慮を信じて今現在に日本政府が自分の国民にやっていることを恐れず強く批判してください。 わが主イエス様が今日の福音でおっしゃったように、私たちにこのようなプレゼントをくださったからです。 アーメン、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오늘은 베트남 교회의 순교 성인이신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입니다.
안드레아 둥락 사제는 1785년부터 1839년 까지 사셨습니다.
베트남 교회는 1533년에 천주교가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1625년부터 1886년 까지 53회 정도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 순교한 순교자들이 약 33만명 정도라고 합니다.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는 1785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사제 서품 후 베트남의 여러 지역을 다니시며 열정적으로 선교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잡히시어 1839년에 목이 잘리시어 순교하셨다고 합니다. 그분은 동료 117명의 순교자들과 함께 1888년 6월 19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이 되셨습니다.
저도 베트남 교회의 성인들에 대해 몰랐는데 이번 기회에 찾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 말씀에서 말씀하셨죠. 당신 때문에 박해를 받을 때가 올 것이라고. 심지어 자기와 가장 친한 부모, 형제, 친구, 친척들이 고발할 것이라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우리를 괴롭히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그런 공격에 대해 저항할 무기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어떠한 적대자도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 이것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도록 우리에게 힘을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순교를 당했을 때는 영원히 하늘나라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늘나라의 생명까지 기꺼이 허락하신 것이라고 저는 굳게 믿고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신자 여러분, 하느님의 이와 같은 사랑과 배려를 믿고 지금 일본 정부가 자기 나라 국민들에게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두려워 하지 말고 강하게 비판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 말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이러한 선물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2021年11月27日土曜日 B年最後のお説教

今週の朗読のみことばまで、ダニエルの預言を聞きました。 その中で、四頭の大きなの獣の正体は 果たして何だったでしょうか? 聖書学者たちは、この四頭の大きな獣は他でもなく、当時のユダヤを攻撃したメデ、バビロニア、ペルシャ、ギリシアだそうです。
もちろん、この四つの国がユダヤを侵略して土地を奪い、ユダヤの宗教と文化をなくすために残酷な方法をたくさん使いました。 まるで日本が帝国主義時代に韓国と東アジアを侵略し、残酷な方法で彼らを苦しめた時を思い出します。
でも、そのようなユダヤの民に神様は約束しました。 神の国の裁判が始まれば、ユダヤを侵略した国が逆に完全に滅ぶことになると。
誰かを侵略して苦しめた国々は、極めて偉大で神聖な王によって完全に滅ぼされるだろうという今日のダニエルの預言でした。
そして今日の福音のみことばで、救い主イエス·キリストは、私たちの魂を苦しめる悪魔に対抗し、世の中の誘惑と心配に、私たちの心が弱くならないように注意を呼びかけました。 同時に、このような誘惑と世の中の憂いから解放されるのは、いつも目を覚まして祈るだけだとおっしゃいました。
教会のカレンダーで1年の最後の日である今日、自分は今年1年間、神様にどれほど多くの恵みを受けて生きてきたかを振り返り、神様に無限に感謝する日として過ごしてほしいです。
2021年、B年の最後の説教でした。 しばらく黙想しましょう。

오늘 독서 말씀까지 이번 주간 내내 우리는 다니엘 서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중에서 거대한 네 마리의 짐승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성서학자들은 이 네 마리의 짐승들이란 다름아닌 당시 유대를 공격했던 메대,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스 라고 합니다.
물론 이 네 나라가 유대를 침략하여 땅을 빼앗고 유대의 종교와 문화를 없애기 위해 잔혹한 방법을 많이 사용했었죠. 마치 일본이 제국주의 시대에 한국과 동아시아를 침략하여 잔혹한 방법으로 그들을 괴롭히던 때가 생각이 납니다.
하지만 그러한 유대 백성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하늘나라 재판이 시작되면 유대를 침략했던 나라가 거꾸로 완전히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누군가를 침략하고 괴롭혔던 나라들은 지극히 위대하고 거룩하신 왕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오늘의 다니엘서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 말씀에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영혼을 괴롭히는 악마에 대항하여 세상의 유혹과 걱정에 우리 마음이 너무 약해지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하셨습니다. 동시에 이러한 유혹과 세상의 근심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것은 늘 깨어 기도하는 것 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달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오늘, 나는 올 한 해 동안 하느님께 얼마나 많은 은총을 받고 살아 왔는지 돌아보며 하느님께 무한히 감사 드리는 날로 지냈으면 합니다만.
2021년 나해 마지막 강론이었습니다. 잠시 묵상하겠습니다.

小野幌教会の鐘の音

2022年1月1日神の母聖マリアの祝日 ミサ

2022年1月2日日曜日 主の公現(祭日)ミサ